[평화] 제주에서 만난 평화의 얼굴들

유도경 121.♡.226.2
2026.07.20 17:28 19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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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하는 얼굴


비행기가 천천히 고도를 높이자, 창밖으로는 어느새 구름이 발아래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지던 구름산맥 위로 또 다른 구름이 얇은 비단처럼 포개졌고, 그 사이를 비집고 내려온 햇살은 여러 겹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평화캠프를 향하던 하늘길 위에서, 내게 허락된 첫 가르침은 빛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눈으로 붙잡을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빛도 그렇고, 바람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어쩌면 평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 나는 그 평화의 얼굴을 만나기 위해 제주로 향했다. 제주가 오랫동안 기억해 온 시간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4·3평화기념관으로 향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장소는 풍경보다 침묵이 먼저 다가온다. 그곳이 그랬다. 기념관 안은 놀랄 만큼 고요했고, 우리는 천천히 전시를 따라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침묵이 발끝에 내려앉았다.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시간이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진 속 얼굴들은 특별하지 않았다. 웃고 있는 아이, 아기를 안은 어머니, 교복을 입은 학생.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딸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들이었다. 그 평범한 얼굴들은 내가 알지 못했던 제주를 조용히 깨워 갔다. 역사는 그들을 숫자로 남겼을지 모르지만, 삶은 끝내 얼굴로 기억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내게 전하고 있었다. 기념관을 나설 무렵 내 마음에 남은 것은 이름도, 통계도, 연도도 아니었다. 전시실 곳곳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은 내게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우리를 기억해 주겠습니까.”


나는 오래도록 그 물음 앞을 떠나지 못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지나간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 끝난 일을 왜 자꾸 이야기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붙잡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제주에서, 미래를 지키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쓰러진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붙드는 일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일이었다. 기억은 뒤를 돌아보는 행위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용기였다.


첫날 만난 제주는 그런 섬이었다. 상처를 지우기보다 품고 살아가는 섬. 뒤를 잊지 않기에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섬. 그래서 가장 오래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섬이었다.


기념관을 나온 우리는 알뜨르 비행장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갑작스러운 폭우가 조용히 그곳의 핏자국을 덮었다. 빗속에서도 우뚝 서 있던 풍경 아래, 한때 전쟁을 준비하던 비행기들이 머물렀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마음을 무겁게 했다.


바람은 낡은 격납고 사이를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바람은 오래전 이곳을 지나갔을 수많은 사람의 숨결까지 함께 품고 있는 듯했다. 그날 알뜨르를 스쳐 지나가던 바람이, 며칠 뒤 강정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의 얼굴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제주가 내게 가장 오래 남길 풍경은 바다가 아니라 사람이 될 것임을.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내게 보여 줄 것이, 결국 평화의 얼굴이 될 것임을.



2. 살아가는 얼굴


둘째 날 아침, 돌담 사이를 흐르던 바람은 마을 구석구석을 오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천천히 걸어 다녔다. 쉼 없이 숨을 몰아쉬는 바다 곁에서 우리는 생명평화백배를 함께했다.


두 손을 짚고,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댄다. 몸을 일으켜 다시 절을 하고, 또다시 몸을 낮춘다. 백 번의 절은 누군가를 꺾기 위한 몸짓이 아니었다.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었다. 그 순간 저항과 기도는 더 이상 다른 말이 아니었다. 평화는 상대를 이기는 힘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용기라는 것을 몸이 먼저 배우고 있었다.


백배를 마친 뒤, 공소회장님과 마주 앉은 오후였다. 그분은 오래도록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고요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은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알아요. 걸음에도 마음이 있거든.”

 

잠시 웃으시던 그분은 이내 뜻밖의 말을 덧붙이셨다. “용역으로 오시는 분들도 다 착한 사람들이에요. 먹고살려고 그 일을 하는 거지요.”


그 말 앞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람은 여전히 돌담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고, 그분의 목소리는 오래된 바위처럼 조용하고 단단했다. 오랜 갈등과 상처를 지나온 사람의 입에서 끝내 흘러나온 것은 미움이 아니라 이해였다. 평화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끝내 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분은 삶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차들이 쉼 없이 오가는 강정의 길가에는 작은 천막 하나가 서 있다. 바람을 견디며 오래 그 자리를 지켜 온 천막이다. 소박한 제대 위에는 꽃과 십자가가 놓여 있었고, 그 곁에는 강정이 견뎌 온 시간이 함께 머물러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자 바람이 제대를 스쳐 지나갔다. 자동차들은 쉼 없이 곁을 지나갔고, 기도는 그 소음 사이를 조용히 건너갔다. 완벽한 침묵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욱 삶을 닮은 미사였다. 세상은 멈추지 않았고, 기도 또한 세상을 피해 가지 않았다. 삶 한가운데 머물며 모든 것을 품어 안는 것, 어쩌면 그것이 평화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진 인간띠잇기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손을 맞잡았다. 낯선 손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천천히 전해졌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잠시 하나의 원이 되었다. 특별한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던 온기만으로도 충분했다. 함께 선다는 것은 같은 생각을 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한순간을 견디는 일임을 그 짧은 시간이 가르쳐 주었다.


캠프에서 가장 환하게 웃었던 날은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만나러 갔던 날이었다. 잔잔한 바다 위로 회색 등이 수면을 가르며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졌다. 누군가는 숨을 죽였고, 누군가는 아이처럼 웃었다. 그 순간 바다는 우리 모두를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날 우리는 한 마리 돌고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고로 꼬리지느러미를 잃었지만,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야생에서 살아가고 있는 돌고래였다. 온몸을 비틀어 무리를 따라 헤엄치고, 먹이를 먹을 때면 다른 돌고래들은 그의 속도에 맞추어 함께 움직인다고 했다.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말보다 오래 남는 풍경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앞에서 이끄는 일이 아니라, 가장 느린 걸음에 자신의 속도를 기꺼이 맞추는 일이라는 것을.


강정에서 보낸 며칠 동안 나는 평화를 배우지 않았다. 다만 평화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같은 기도를 올리며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돌아보면 강정은 특별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하루들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그리고 그 하루들이 오래 쌓여 한 사람의 얼굴이 되고, 다시 그 얼굴들이 모여 한 마을의 얼굴이 되었다. 내가 만난 강정의 평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낸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3. 얼굴이 되다


빛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원래 그곳에 있던 것들을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바다 위에 머물면 은빛 물결이 되고, 돌담에 스미면 오래된 시간의 결을 드러낸다. 사람의 얼굴에 내려앉으면, 그가 지나온 계절을 조용히 비춘다. 아마 사람도 그런 존재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는 스쳐 지나던 풍경이, 그 사람을 알고 난 뒤에는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것처럼.


우리가 그려 낸 제주도 그랬다.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바다를 바라보았지만, 우리 각자의 도화지에는 모두 다른 제주가 피어났다. 누군가는 남방큰돌고래를 그렸고, 누군가는 강정의 바다를, 누군가는 함께 웃던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림보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붓을 움직이던 이의 미소, 친구의 그림을 기웃거리던 눈짓, 한동안 붓을 멈춘 채 기억을 더듬던 마음. 천천히 선 하나를 그어 내려가는 그 손끝까지. 그 모든 모습에 저마다의 제주가 머물러 있었다.


그 그림들이 한 공간에 나란히 놓였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한 사람의 시선으로는 끝내 담아낼 수 없던 제주가, 서로 다른 기억들이 모였을 때 하나의 풍경이 된다는 것을.


평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기억하고,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기도하고, 누군가는 끝내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서로 다른 삶들이 모여 비로소 평화라는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 간다.



4. 평화의 얼굴


2026년 7월, 이제야 강정은 내게 하나의 얼굴이 되었다. 바다는 품이 되고, 돌은 기억이 되었으며, 생명들은 안부가 되었다. 함께 웃고, 걷고, 기도하고, 침묵했던 모든 시간은 제주라는 얼굴 위에 하나의 표정을 남겼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린 시간, 상처를 외면하지 않은 시간, 잊힌 이름을 기억해 온 시간, 그리고 끝내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애쓴 시간. 그 시간들이 모여 오늘의 제주를 빚어내고 있었다.


캠프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 안에는 하나의 질문이 머물러 있었다. ‘평화란 무엇일까’. 


제주를 떠난 지금, 나는 그 질문에 작은 대답 하나를 품고 있다. 평화는 거창한 이상도, 언젠가 도착해야 할 먼 미래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사랑하고, 기다리고, 기억한 끝에 마침내 한 사람의 얼굴 위에 내려앉는, 가장 다정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제주에서 그 표정을 만났다.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화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위에서.


나는 그 얼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평화의 얼굴을.

 

 

유도경 힐데가르트 (비영리단체 이음새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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