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사회] 세상과 함께 걷는 진리

정다빈 121.♡.226.2
2025.09.17 12:00 6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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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열여덟 살 최말자 씨는 성폭행을 당하려는 순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피해자의 필사적 저항을 정당방위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최말자 씨의 행동을, 가해자를 향한 중상해로 규정하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기가 막힌 판결을 내렸다. 이 억울함이 해소되기까지는 무려 61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 910일 대법원은 이 사건의 재심 판결을 통해 마침내 그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어느덧 팔순이 된 최말자 씨는 자신의 무죄 판결이 지금도 억울하게 고통받는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며, 재심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한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선다. 법 해석은 시대의 사회적 감수성과 인권 의식의 성장에 따라 변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법원이 자신을 지키려는 저항을, 남성을 향한 폭력으로 해석했다면, 오늘날의 법원은 그것을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한 권리라고 본다.

 

우리 사법사에서는 이런 사례들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성폭행 가해자에게 피해자 여성과 결혼하면 처벌을 면해주겠다고 권유하는 판사들이 있었다. 피해자의 고통에는 무관심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법을 해석하는 후진적 면모였던 셈이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이런 판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회적 감수성과 인권 의식의 변화가 법과 그 해석을 뒤따르게 한 또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교리 또한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형제에 관한 교회 교리를 수정한 것은, 인간 존엄성 수호가 시대의 변화를 넘어선 영원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한때는 교회에서조차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여기던 사형이 이제는 인간의 근본적 존엄을 부정하는 제도로 이해되는 것이다. 법이 사회적 요구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재해석되듯, 교리 역시 시대와 인간 이해의 진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수정된 교리는 다시금 사회 변혁의 동력이 되어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교회의 가르침 역시 끊임없는 대화와 성찰을 통해 더 넓은 정의와 자비를 향해 세상과 함께 숨 쉬며 걸어간다.

 

법학과 신학을 오가며 공부하는 내게 이 두 학문의 공통점은 더딜지라도 분명히 진리와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가장 보수적인 법정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교회에서도 비록 역동하는 세상의 요구보다는 느릴지라도 더 나은 인간 이해와 인간 존엄의 수호를 위한 여정은 계속된다. 오랜 시간의 논쟁과 저항, 대화와 숙고, 그리고 이에 따른 변화들이 쌓여 인간을 향한 더 깊은 존중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법과 교리가 현실을 재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일깨운다. 법정에서, 신학의 장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논쟁하되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의 변화와 상상력을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의 법과 교리는 결코 최종적이지 않으며, 오늘의 해석은 결코 닫힌 진리가 아니다. 진리로 가는 길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상상과 연대 속에서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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