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사회] 올해, 봄은 언제 올까

조현철SJ 121.♡.226.2
2025.05.02 16:07 1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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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인가 했더니 4월 중순에 눈보라가 쳤다. 파면으로 일단락되나 했더니 집으로 돌아간 윤석열은 다 이기고 돌아왔다며 개선장군처럼 행세한다. 우두머리가 쫓겨났는데 졸개들은 여전히 활보한다. 국회 몫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다 탄핵 소추된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는 헌재의 기각 판결로 직에 복귀하자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2명을 지명하며 헌재 알박기에 나섰다. 헌재가 제동을 걸긴 했지만, 대통령이 파면돼도 직속 수하가 권한을 이어받는 체제에서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이제는 대선에 출마한다며 몸을 푼다. 윤석열의 분탕질을 수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세월호 참사, 박근혜 파면, 코로나19. 우리는 때마다 이제는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그랬다. 하지만 이후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 한발 떼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번에도 그냥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현상 유지가 아니라 퇴행이다. 그리 되도록 놔두기에는 지난겨울부터 광장에 쏟아부은 열정과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해서, 이전의 일상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바라는 이후의 일상을 정치에 요구해야 한다.

 

광장에서 내다본 세계는 이전의 일상이던 각자도생의 세계는 아니었다. 청년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취약한 처지인 사람들이 발언에 나서 이전부터 위기였던 자신의 삶을 토로했다. 함께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소망하고 존중과 돌봄, 연대와 협력을 다짐했다. 광장에서 나온 이야기에는 이전과 다른 세계를 만나려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간절함이 배여 있었다.

 

상황이 힘들수록 기본을 챙겨야 한다. 광장의 염원에 닿기 위해 살펴야 할 기본의 하나는 불평등 완화다. ‘세계불평등연구소‘2022 세계불평등보고서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불평등이 극심해졌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상위 10%의 소득 비율은 전체의 46.5%인데 하위 50%16%에 불과하다. 1990년에 비하면 상위 10%는 소득 비율이 11% 늘었고 하위 50%5% 줄었다.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억 7850만 원과 1천 233만 원으로 격차는 14배가 넘는다. 자산 비율은 각각 전체의 58%6%였다. 우리나라 불평등 확대 원인으로는 사회안전망 미비, 규제 완화, 고속 성장이 꼽혔다. 성장한다고 불평등이 완화되지는 않는다. 보고서는 불평등 대책으로 부유세를 제안한다. 부유세로 확보한 재원으로 교육과 복지, 기후 등에 투입하여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증세는커녕 부자 감세에 열중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종합부동산세 완화, 가상 자산 과세 유예를 단행했고 상속세 완화도 논의 중이다. 불평등 완화가 아니라 강화로 치닫는다.

 

불평등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위기를 부른다. 극우 발호의 주된 배경도 불평등 심화다. 불평등은 소외를 낳고 사회적 유대감과 소속감을 갉아먹으며 극우의 온상이 된다. 극우 논리는 사회적 약자를 먹이로 삼는다. ‘여러분이 곤경에 빠진 건 저들 탓입니다.’ 극우는 혐오를 먹고 자란다. 극우에 빠진 이들도 약자라 문제의 근원인 불평등은 빠진 채 사회의 끼리 부딪힌다. 대화가 되지 않는 극우는 통합이 아니라 해소 대상이고 그러려면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

 

우리가 살펴야 할 또 다른 기본은 사회적 겸손이다. 한계를 거부한다는 뜻에서 현대 세계는 오만하다. 성장만 강조하고 분배는 경시하며 한계는 무시한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오만하게 한계를 무시하면 눈이 흐려져 인공지능처럼 놀라운 기술도 결국 행복이 아니라 재난을 부른다. 얼마 전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에서 일어난 최악의 산불 뒤에 지구온난화가 있다. 요즘 일상이 된 싱크홀 밑에 갈수록 늘어나고 깊어지는 도심 지하개발이 있다. 둘 다 우리가 을 넘었다는 경고다. 선을 넘을수록 재난은 커진다. 겸손하게 한계를 인정하면 눈이 맑아져 사람도 비인간 존재도 제자리를 찾는다. 그럴 때 우리가 누려야 할 일상이 펼쳐진다.

 

이제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변이 없는 한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대통령이 될 거다. 하지만 광장의 염원을 이재명과 민주당의 대선 승리로 치환하면 안 된다. 그들이 광장의 성과를 독식해도 안 된다. 당장은 달콤해도 결국은 우리 사회에도 민주당에도 독이 된다. 우리는 모두 문재인 정권이 삼킨 독과(毒果)에서 출현한 괴물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다.

 

광장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민주, 평등, 인권, 돌봄, 생태 등 광장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순하다.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건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광장에서 분출한 민의를 대변하려면 다양한 정치 세력이 뿌리내릴 수 있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적대적 공생이라 불러 마땅한 거대 양당 체제 속에서 민주당이 누려온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겠다.”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 개혁으로 제3의 선택을 통한 선의의 정책경쟁이 가능하게 하겠다.” 이를 위해서 비례대표 확대,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는 위성정당 금지를 약속했다. 이 정도만 해도 광장의 염원을 뒷받침할 정치 개혁으로는 충분하다. 제대로 실천만 한다면 정치 양극화 완화와 극우세력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정치 개혁은 우리가 이전과 다른 이후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뒤돌아보면 광장의 염원을 담은 공약(公約)은 이후 공약(空約)이 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권은 노동 존중을 공약하고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하여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지금 민주당에서 나오는 정책 공약에서는 광장에서 나온 사회적 소수자의 요구와 소망을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다. 현실의 제약을 들지만, 현실에 압도되면 변화는 없다. 광장의 힘으로 집권한 정당이 광장의 정신을 망각하거나 배신하면 분노하고 저항해야 한다. 광장의 염원을 존중하도록 정권을 견제하고 견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광장에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나락으로 떨어지던 우리나라를 끌어올린 힘은 광장에 모인 우리, ‘에서 나왔음을 잊지 말자. 광장의 꿈이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변혁의 물결이 일 때, 바로 그때 봄은 온다.

 

 

조현철 신부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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