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사랑이 우리를 구하리라

홍예진 121.♡.226.2
2025.03.11 11:43 3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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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제주도는 정말 특별하고 소중하며,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섬이다. 제주도를 향한 나의 사랑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시작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릴 때 가족 여행으로 가던 그 섬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한 책을 읽은 후부터였다.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지슬‘. 그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삼다도로 불리는 그곳이 이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우며 4.3과 강정마을의 상황에 대해 매우 간략하게 알게 되었고, 육지에서 일상을 살아가던 중 우연한 기회로 20232월 삶을 살리는 평화캠프 1기에 참여하며 제주도에 대한 나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평화캠프의 프로그램은 강정마을에서 23일 동안 머물면서 마을의 평화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첫날,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 관련 다큐를 시청했다. 마을의 오랜 주민으로 자신의 삶터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국내외 평화 활동가들의 인터뷰가 담긴 다큐였다. 그 다큐에서, 나에게 아로새겨진 강정마을 주민의 한마디가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지만 우리가 깨지지 않는 계란이 되면 되잖아요.” 한창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한 무력감과 회의감으로 고민하던 때, 깨지지 않는 계란이 되면 된다는 말이 나를 뒤흔들었고, 그런 삶에 다다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절대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강정마을에 머무는 내내 그러한 삶에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머물렀다. 나는 천막 미사에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첫 천막 미사의 경험은 정말 강렬했다. 해군기지 옛 정문이자 구럼비 바위로 가는 길 입구였던 곳 바로 건너편, 차가 지나다니는 아스팔트 도로와 맑은 물이 흐르고 솔잎란 군락지가 있는 강정천 사이에 세워져 있는 미사 천막. 늘 미사를 드리던 성당 성전과는 모든 게 다른, 오히려 열악하다면 열악하다고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평화가 짓밟히고 피조물들이 짓밟힌 그 현장에서 평화를 위한 미사를 드리는 것은 정말 특별했다. 여전히 흐르고 있는 강정천의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드렸던 미사. 하느님의 함께하심,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의 함께하심을 강정천의 물소리, 새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고, 미사에서 받아 모신 성체에서 그 어느 때보다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함께하는 신부님, 공소 회장님, 주민분들, 평화 활동가들, 휴가차 제주도를 찾았다가 미사에 오신 분들을 보며, 한 사람이 깨지지 않는 계란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런 연대와 환영의, 같은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강정과 제주도에 더욱 흠뻑 빠지게 된 나는 그해 여름, 강정에서 봤던 다큐에 등장하는 제주생명대행진까지 참여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제주도 반 바퀴를 순례하며, 제주도의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이었다. 성산 제2공항 건설, 비자림로 파괴, 해녀 삼촌들의 이야기 등 아파하는 제주도를 온몸으로 느꼈고, 특히 아름답고 투명한 동복리 해안을 걸을 때 일본 정부에서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착잡한 감정이 가득했다. 핵 오염수 방류로 인해 모든 물살이의 터가, 공동의 집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끔찍했다. 그렇게 제주생명평화대행진에 다녀온 후, 더더욱 나의 마음은 제주도를 향해 있었고, 제주도, 특히 강정의 소식들을 계속 지켜보며 연대하려 애썼다.

 

2년이 흐른 후, 삶을 살리는 평화캠프 2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주저 없이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공항에서 공항리무진버스를 타고 강정마을에 내리자마자,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바닷바람의 짠 내음과 마을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다가왔다. 역시 언제 와도 참 좋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에서 첫날을 묵고, 본격적으로 평화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가장 첫 번째로 간 곳은 4.3 평화기념관과 4.3 평화 공원이었다. 평화캠프 1기에도 갔었던 곳이지만, 친구의 가족 또한 피해자로 위패가 모셔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니 새롭게 다가왔다. 또한, 이번 해설을 들으면서 역사적 사건들은 그 사건에만 집중해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들을 고려하며 더 복합적인 시선을 갖고 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후 강정마을로 다시 돌아가 강정 공소 회장님과 함께 강정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에서 시작해 크루즈항과 해군기지, 강정천을 돌아 다시 센터로 돌아오는 여정 곳곳에서, 공소 회장님은 지금까지의 마을의 변화 과정과 투쟁 과정을 정말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해군기지와 강정 바다가 훤히 보이는 연대(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에 올라가 열심히 해군기지 건설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설명하시다 말을 멈추시고 침묵 중에 바다를 바라보았던 공소 회장님의 표정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그 표정은 정말 이 바다와 마을을 사랑하기에 지을 수 있는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사랑이 공존하는 표정이었다.

 

첫날 마지막 일정으로 영화 지슬을 시청한 뒤, 둘째 날 첫 일정으로 영화 지슬의 실제 현장 큰넓궤와 유사한 동굴에 직접 들어가 보는 시간이 있었다. 용암동굴이라 바닥도 울퉁불퉁하고 기어야지만 지나갈 수 있는 곳이 있어 정말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큰넓궤는 이것보다 더하다는 설명을 듣고, 당시 주민들의 삶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38일 참석했던 한국여성대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포체투지를 보며, 큰넓궤를 기어갔을 주민들의 모습, 지슬에서 본 그 모습과 겹쳐 보였다. 모두 하느님의 숨결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임에도, 어떤 인간 존재들은 그저 삶을 계속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다른 이들보다 좁디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일까. 동굴 끝에 다다라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손전등을 모두 끄고 완전한 암흑 속에서 큰넓궤의 희생자들을 위해 침묵 중에 기도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 빛과 어둠의 경계에 대해 큰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중 나의 뇌리에 계속 있던 질문이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였다. 한강 작가님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고 밝히셨지만,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능할 수 있겠다고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를 읽으며 느꼈다. “사랑이 사후까지 미칠 수 있으며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죽음의 경계 너머까지 계속되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확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위안의 이유가 됩니다. 영혼들의 친교 안에 단순한 지상의 시간은 극복됩니다.”

 

2차례의 캠프,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콜로 3,14)라는 말씀처럼, 결국 사랑이 모든 존재를 잇는 평화의 끈이라 느끼게 되었다. 삶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마을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자연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계속 사랑하고 기억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함께할 수 있었고, 함께하며, 함께할 것이라 확신한다. 결국 사랑이 우리를, 모든 존재를 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홍예진 크리스티나 (제주를 사랑하는 육지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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