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새해, 광장에서 새로운 세계를 소망한다

조현철SJ 121.♡.226.2
2025.01.13 16:38 156 0

본문

 

웹진 이미지 규격 (3).png

 ⓒ연합뉴스


‘12·3 불법 계엄사태에 맞서 열린 ‘2024 광장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이다. 무엇보다 청년 여성이 대거 참여했다. 시위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촛불과 정형화된 단체 깃발 대신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기발한 문구의 개인 깃발이 광장을 수놓으며 참여자의 정체성을 알렸다. 장엄·비장한 민중가요와 경쾌·발랄한 K-팝이 중장년과 청년을 하나로 연결했다. 위기를 넘는 방식이 달라졌다. 광장은 즐기며 저항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음식과 음료를 미리 계산해 집회 참여자에게 제공하는 선결제 물결은 해외까지 퍼졌다. 앳된 목소리로 떡집에 전화해 가장 싼 떡 10개를 결제했다는 소식이 겨울 광장을 덥혔고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1980년 광주 양동시장의 주먹밥이 부활했다. 지난 21일 윤석열 체포를 내걸고 서울 용산으로 트랙터를 몰고 가던 전봉준투쟁단이 남태령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막히자 설렁탕, 닭죽, 핫팩 등 후원 물품이 몰려왔다. 선결제가 배달 선결제로 진화했다. 선결제는 현장에 가서 함께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광장은 연대의 장이었다.

 

사람들은 가장 아끼는 것을 선뜻 광장에 가져왔다. 청년의 응원봉이 농민의 트랙터가 그랬다. 무엇보다 시간이 돈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일 저녁과 주말 시간을 기꺼이 내놓은 사람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시민으로 행동했다. 그러자 일상에 만연하던 무관심과 무기력, 방관과 순응이 사라지고 이타심과 관용, 사회적 소속감과 공적 사안에 대한 열망, 치유와 해방 등 평소 접하기 어렵던 것이 일상이 되었다. 광장은 경청과 격려, 환대와 협동, 포용과 돌봄의 장이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노동자, 농민, 이주민 등 위태로운 삶을 이어온 사회적 소수자가 광장에서 만나 서로를 공감하고 위로했다. 이들은 탄핵을 넘어 경제 불평등과 노동, 차별과 혐오, 장애인 이동권, 기후와 생태 등 권력이 무시해온 사회개혁 의제를 광장 한가운데로 가져왔다. 광장은 남태령고개의 전봉준투쟁단, 안국역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해고노동자 농성장 연대로, 전태일의료센터건립위원회 후원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광장은 민()이 주도하는 진짜 민주주의의 장이었다.

 

2024년 겨울 광장, 리베카 솔닛이 말한 재난 유토피아가 피어났다. 이제는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은 줄 알았던 순간들이 돌아왔다. 1980년 계엄군에 짓밟힌 광주에서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2024년 광장에서 재현되었다(<소년이 온다>). 우리는 계엄이라는 정치적 재난에 맞서 생겨난 광장의 체험에 환호하고 감동했다. 우리가 광장의 체험을 갈망해왔고 이 갈망을 구현할 능력도 있음을 깨달았다.

 

광장의 체험은 밝은 눈과 맑은 마음으로 함께 현실을 읽고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좋은 것들을 깨우라는, 좋은 세상을 만들라는 초대다. 재난(disaster)은 어원상 별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재난이 덮치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일상은 한순간 암흑의 세계로 바뀐다. 불법 계엄과 내란이라는 재난은 우리를 빛과 희망이 없는 상태로 떨어뜨릴 뻔했지만, 우리의 회복력은 놀라웠다. 광장에 들고나온 응원봉은 서로에게 빛나는 별이 되었고 광장을 따뜻하게 데운 선결제는 빛나는 별을 서로의 마음에 새겨놓았다. 광장에서 재난을 이겨낸 우리는 불현듯 이전과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

 

다른 세계로 가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불법 계엄이 무산된 후 잠시 멈칫하던 정부와 국민의힘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본 내란 사태를 노골적으로 비호, 동조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숙연한 표정으로 국정 안정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사태를 방치하며 내란 사태의 조기 종식을 방해한다. ‘얼굴을 두껍게 하라’ ‘고개 숙이지 말라며 단일대오를 주문하는 국민의힘은 수구에서 극우로 변신 중이다. 극단적 진영 논리로 내란 수괴의 지지도가 오르며 계엄 불가피론마저 나온다.

 

넘어야 할 가장 험한 산은 사람과 생명보다 성장과 이윤을 맹신하는 경쟁과 효율 체제다. 자유의 이름으로 강자의 기득권 수호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 장벽이 우리 일상에서 광장의 역동성을 원천 봉쇄한다. 여기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그래서 넘어가기 가장 까다로운 곳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광장이 닫힌 후에는 무관심과 환멸이 밀려온다. 그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 2016년 광장은 박근혜 퇴진에서 멈추었고 문재인 정권 5년 후 우리는 괴물에게 권력을 쥐여주었다.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광장에서 희망을 본다. 재난에 맞서서 청년들이 만들어낸 광장의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역동성이 무엇보다 강력한 희망의 원천이다. 남은 과제는 광장과 일상을 연결하는 일이다. 재난 유토피아를 광장에서 일상으로 옮기는 일 말이다. 광장의 역동성을 제도적으로 구현하여 일상에서 계속 작동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광장에서 분출하던 역동성이 제도로 경직되지 않게 광장의 담론을 다양한 공론장으로 가져와 사회적 공감과 연대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광장이 끝나고 민주공화국의 시민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충실한 소비자로 돌아가면 안 된다. 진짜 민주주의가 광장을 넘어 일상에서도 계속 구현되어야 한다.

 

‘2024 광장퇴진 광장을 넘어 광장의 역동성으로 분열과 고립의 일상을 깨는, 체제를 바꾸는 전환 광장이어야 한다. 광장에 울려 퍼진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는 이전과 판이한 새로운 세계. 새해, 새로운 세계를 향한 발걸음이 멈추지 않길 소망한다.

 

 

 

조현철 신부 (서강대 명예교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