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평화의 길목에서, 한·미·일 청년들의 만남

이규민 121.♡.226.2
2024.11.14 11:50 15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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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저는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에 참여할 소중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행사는 한국, 일본, 미국의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5일간의 여정 동안 '평화의 경로들'이란 주제로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평화에 대해 더불어 고민하고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한국 가톨릭교회에 관해 특히 조선시대 순교의 역사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 역할 등 여러 측면에서 큰 매력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번 포럼에서는 특별히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가톨릭적인 접근 방식이 평화와 한반도의 갈등 및 분단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청년의 목소리와 역량을 중심에 두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이전에 주최했던 평화포럼과 달리 올해 포럼은 처음으로 청년 참가자들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점에 관해 행사 주최 측인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피스모모, 의정부교구 관계자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포럼은 청년들을 단순히 "포함"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목소리와 필요를 우선시하는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 세계 청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과 한반도 평화 관련 행사에 여러 차례 참여하고 조율한 경험이 있어서, 이러한 자리가 얼마나 드문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 중심의 위계가 강한 한국 문화에서 청년들은 평화 구축과 같은 진지한논의에서 형식적으로 포함되곤 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청년 프로그램에서 흔히 기대할 만한 즐거움, 창의성, 우정뿐만 아니라 평화에 관해 성찰하고 나누는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특히 '동북아시아 평화 게임'이라는 국제 가상 토론회에서는 출신 나라와 관계없이 조별로 편성되어 4시간 동안 민감한 외교 문제까지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만남을 특별하게 만든 또 하나의 요소는 다양한 배경의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과 관심을 세심하게 제공한 점이었습니다. 교통비와 숙박, 언어 통역 지원을 비롯하여 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점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개 세션이 마련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수많은 학술 및 정책 회의에 참여했는데, 청년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는 Q&A 세션이 유일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자신들의 배움을 나누는 발표회는 청년들이 무대 위에 서고 주교님과 학자들, 평화활동가들이 청중으로 함께해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참신한 기회였습니다. 이 공개 발표가 1999년부터 청년들의 창의적인 활동을 지원해 온 서울의 하자센터에서 이루어진 점은 더욱 뜻깊었습니다.

 

직접 목격한 분단과 갈등의 상처

 

부활을 믿기 위해 예수의 상처에 손을 댄 성 토마스의 이야기처럼, 평화에 대해 배우는 과정에서 갈등의 영향이 우리 몸과 영혼에 느껴질 때 그 의미는 더욱 강렬해집니다. 이 프로그램이 열린 장소 자체가 그러한 상징성을 지녔습니다. 이번 포럼은 남쪽 국경 바로 아래 파주에 있는 민족화해센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프로그램 중 하루는 참가자들이 6팀으로 나뉘어 군사주의, 식민주의, 분단의 영향을 받은 여러 장소를 방문하는 현장 답사로 진행되었습니다. 각 팀은 분단의 상처와 생태계 파괴의 현장인 대전, 삼척, 교동도, 철원, 소성리, 군산을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교동도를 방문하였는데 저희 할아버지의 가족이 바로 교동도 맞은편에 있는 현재의 북한 황해도 출신이기 때문에 특히 제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교동도로 가기 위해 우리는 두 개의 다리를 건넜습니다. 서울에서 강화도로 가는 다리는 수백 년 동안 한국과 세계를 연결해 온 관문이었고, 이후 2014년에 지어진 강화도에서 교동도로 가는 새 다리를 건넜습니다. 2014년 전까지는 배를 통해서만 교동도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북한에서 단 2.6km 떨어진 교동도에 들어가기 위해, 보안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교동도에서의 첫 번째 일정은 김영애 선생님이 계신 우리누리 평화운동 사무소를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누리 평화운동은 평화 교육과 평화 활동을 펼치는 NGO, 부모님이 교동도 출신이었던 김영애 선생님은 10여 년 전에 이 NGO를 설립하기 위해 이곳에 정착하셨습니다. 김영애 선생님은 교동도가 중립적인 평화의 섬으로서 지녀온 오랜 역사와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3만 명의 피난민들이 이주해 정착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평화롭고 통일된 한반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교동도는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비전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김 선생님은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인 북한 피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전쟁에 대한 기억과 교동도에서의 적응 경험을 회상하는 인터뷰 영상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는 인터뷰 대상자 가운데 한 분만 생존해 있다는 말을 듣고, 저는 제가 진행했던, 내 고향으로의 편지’ 구술사 프로젝트를 떠올렸습니다북한에 가족을 두고 헤어진 한국계 미국인 노인들의 이야기와 기억을 기록하는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 역시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추모와 염원, 그리고 통일을 위한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의 분단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기도로 우리를 초대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 내내 공식적인 미사를 통한 기도를 비롯해 비공식적인 묵념까지 여러 기도의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위치한 성당에서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평화의 기도를 바치고 제가 좋아하는 떼제 공동체의 노래, "Ubi Caritas"를 부른 것은 매우 인상적인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그동안 JSA를 방문할 때 항상 정치적, 안보적 측면에 집중했다면, 분단과 유혈의 장소에서 일치와 자비를 기도한 이번 방문은 애틋하고도 고요하게 다가왔습니다.

 

갈등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순간들도 의미 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싸운 군인, 시신을 찾지 못한 민간인, 그리고 고향과 가족을 떠나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못한 피난민들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곳곳에서 멈춰서 기도했습니다. 이번에 일본 오키나와 출신 친구로부터 배운 단어 (akogare)’는 그리움, 동경, 또는 염원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과 분리된 가족들과의 재회를 바라는 마음은 망향대에서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망향대는 분단으로 인해 고향을 떠난 이들이 북한을 바라보며 세운 추모비가 있는 곳입니다. 빗속에서 조상의 영혼을 멀리서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제단을 바라보며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이산의 아픔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모두를 위한 평화의 시냅스

 

언어, 문화, 배경을 넘어 우리가 맺은 관계들이 마치 시냅스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연히도, 이는 이 행사를 주최한 기관인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의 영문 약자 CINAP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시냅스는 뉴런 사이의 연결과 에너지를 전달하는 지점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모두가 모두에게 배운다라는 뜻을 지닌 공동 주최 단체 피스모모의 이름과도 연결된다고 느낍니다. 평화를 향한 여정에 함께하는 이들과의 연대, 정치와 국경을 초월하는 희망이 절실하던 때 이번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은 평화를 위해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저에게 더없이 적절한 때 찾아온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규민 바오로 (노트르담대학교 평화학 및 사회학 박사과정)

 

 

이 칼럼은 미국 노트르담대학교 크록 국제평화연구소에 게재된 영문 원고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규민님의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Connecting, Learning, and Praying with Youth from South Korea, Japan, and the United States: Reflecting on My Experience at the Catholic Korea Peace Forum // News // Kro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Peace Studies // University of Notre 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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