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약자의 복수, '프라미싱 영 우먼'이 던지는 질문

정다빈 118.♡.21.101
2024.07.17 11:28 41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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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2021년 개봉한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의 주인공 캐시는 낮에는 커피숍에서 일하고, 밤에는 바에서 술 취한 여성들에게 개수작을 부리는 남자들을 응징하는 젊은 여성이다. 한때 의대생이었던 캐시가 방황하는 것은 7년 전 절친 니나의 죽음 때문이다. 니나는 학교 파티에서 술에 취한 채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고, 그 영상이 유포되며 2차 피해를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 캐시는 니나를 돕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지만, 가해자들은 처벌받기는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이제는 의사가 되어 잘 살아간다.

 

니나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캐시에게 사람들은 "이제 네 인생을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캐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계속되는 세상을 견딜 수 없다. 복수를 결심한 캐시가 찾아간 의대 학장은 "그런 사건은 너무 많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옛 동창으로 캐시에게 호감을 보이던 소아과 의사 라이언은 알고 보니 가해자 중 한 명이었고, 진실을 따져 묻는 캐시에게 "너는 의대를 자퇴한 실패자"라며 오히려 그녀를 몰아붙인다. 더는 견딜 수 없는 캐시는 복수에 나선다.

 

영화는 성폭행 피해 여성들이 마주하는 가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니나가 강간 피해를 신고했을 때, 돌아온 것은 의심의 눈초리와 니나의 행실을 문제 삼는 가십뿐이었다. 대학은 피해자 지원보다는 자신들의 평판 보호에 집중했고,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묻는 사법 시스템 또한 고통을 가중했다.

 

사실 영화의 제목 "프라미싱 영 우먼"은 미래가 기대되는 "프라미싱 영 맨"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젊은 남성 성범죄자들을 비꼰 것이다. 실제로 2016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엘리트 수영선수인 가해자 브록 터너를 두고 한 대학 관계자는 촉망받는 젊은 청년(Promising young man)’이라는 이유로 그를 옹호했다. 터너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했고, 의도적으로 성폭행 대상자를 찾았다는 정황도 드러났지만, 구치소 복역 6개월, 보호관찰 3년이라는 낮은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터너에게 선고가 가능한 법정 최고 형량이 14년이며, 검찰이 6년을 구형했다는 점에서 형편없이 낮은 형량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술에 취해 있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부분이 적다고 참작의 사유를 들었다. 이에 더해 터너의 아버지가 쓴 고작 20분 동안 벌어진 일 때문에 너무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는 내용의 편지가 공개돼 큰 논란이 일었다.

 

2014년 하버드 대학신문 크림슨에는 교내에서 성폭행을 당하고도 학교 측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피해자의 글이 실렸다. 당시 피해자가 "내 미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는 내가 떠나겠다"고 밝힌 것은 상징적이다. 영화 속 니나처럼 이 학생 역시 가능성으로 가득 찬 젊은이였지만,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미래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오히려 하버드를 떠나기로 한 것처럼, 영화에서도 가해자들의 장래가 고려되는 동안 정작 니나와 캐시의 촉망받는 미래는 짓밟혔고 아무도 그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영화는 또한 약자의 복수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가혹한 싸움임을 드러낸다. 캐시는 "술 취한 젊은 남자는 그럴 수 있다"는 끔찍한 합리화에 맞서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가해자에게 마땅한 책임을 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해서도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씁쓸한 인정이 찾아온다.

 

캐시의 방식은 옳았을까?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도 정의를 구현할 수 없을 때, 화해를 위한 노력은 차치하고 자신의 책임에 관한 인정조차 하지 않는 가해자들을 대면했을 때, 피해자는 그리고 약자는 무엇으로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파울로 프레이리는 압제자들은 항상 피압제자들에게 비폭력을 요구한다는 통찰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만 비폭력을 강조하는 권력자들의 태도를 지적한다. 제도도, 문화도, 법도 모두 내 편이 아닐 때조차 약자에게 온건하고 합리적인 방법만을 요구한다면 이는 곧 아무것도 소리 내 말하지 말라는 강요와 다름없을 것이다.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던 캐시의 무력감이 더 깊게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정다빈 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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