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난민] 조민아 교수의 국경 일기

조민아 118.♡.21.101
2024.05.24 15:32 1,090 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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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학기 말 성적 제출을 일찍 마쳤다. 노갈레스 (Nogales)라는 이름을 가진 범상치 않은 도시에 오기 위해서다. 아리조나 남쪽 투썬 (Tucson, AZ)에서 멕시코 쪽으로 내려오면 만나는 이 도시는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에 있는 많은 도시들 중에서도 마을을 가로질러 국경이 나뉘는 유일한 곳이다. 아침에 미국에서 밥을 먹고 점심 때 멕시코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수퍼마켓에 가기 위해, 직장에 가기 위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나라와 저 나라를 오가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민 서류가 있어야 가능하다. 서류가 없는 사람이 국경을 넘으면 범죄가 되고 불법이 된다.  이들이 넘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도시의 허리를 끊어 담을 쌓고 흉측한 철조망을 감아 놓았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길이는 약 3,000 km가 넘는다. 미국은 중남미 이민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1049 km 구간에 높이 9m 가 넘는 철제 장벽을 세웠다. “사람들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이 사람들을 침범한다” (People do not cross borders; borders cross people).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마을의 어디서나 눈에 띄는 길고 위압적인 담장을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매년 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멕시코-미국 국경을 넘는다. 365일로 환산하면 매일 2만 7천명이 넘는다. 2만 7천명의 이주민들이 오늘 아침부터 계속 국경을 넘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 대부분은 삶의 밑바닥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아 국경을 넘지만 미국 정부가 이들에게 체류를 허가하는 과정은 까다롭기 그지 없다. 결국 많은 이들이 서류 없이 국경을 넘다 폭력에 노출된다.

 

내가 가르치는 학교 (Georgetown University, Washing DC, USA)에서는 교수들과 교직원들을 초청하여 진행하는 마지스 현장학습 프로그램이 있는데, 올해의 방문지는 바로 이 노갈레스이다. 우리의 현장학습을 동반할 단체는 KBI, 혹은 키노 (KINO)라 불리는 키노 보더 이니셔티브 (Kino Border Initiative)이다. 2009년, 이주민들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예수회가 지역 교구와 성체 선교 수녀회 (Missionary Sisters of the Eucharist)와 협력하여 설립한 이주민 인권단체다. 키노라는 이름은 예수회 선교사였던 에우세비오 키노(1645-1711)신부님의 이름을 따랐다. 1665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1681년에 멕시코시티에 선교사로 파견된 키노 신부님은 노갈레스를 포함한 피메리아 알타 지역 (지금은 멕시코 소노라 주와 미국 애리조나 주로 나뉘어 있는 곳)에 수많은 선교지를 설립했으며 멕시코 인디언의 노예화를 반대했다.

 

“To be present, not to serve.” 마지스 키노 현장학습 프로그램은 봉사에 앞서, 그 순간, 그 자리, 그 사람들과 함께 머물 것을 권한다. 노갈레스에 6일 동안 머무르며 이주민들과 함께 했다. 이어지는 글은 하루 하루의 성찰을 기록한 일기를 간추린 것이다.

 


마지스 키노 둘째날 (2024년 5월 12일)

  

노갈레스에 오기 위해 거쳐야 하는 투썬은 아리조나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 텍사스의 델리오와 엘파소,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와 함께 이주민이 가장 많이 몰리는 국경 순찰 구역이다. 그중 이민서류를 갖추지 못한 많은 이들은 아리조나의 사막을 건너 국경을 넘다 체포, 구금되어 (detained) 강제 송환 (deported)되거나 사망한다. 1998년 이후 최소 8,000명의 이주민이 국경을 넘으려다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리조나의 사막은 모래사막이 아니라 마른 먼지가 날리고 거칠고 메마른 황무지 사막이다. 여름철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평균 48°C에 이르는 죽음의 더위가 있고, 가파른 바위 지형이 이어져 낙상의 위험이 도사리며, 발 밑에는 가시덤불과 돌밭이 있고, 모래 밭엔 뱀과 전갈과 불개미가 득실댄다. 건기에는 어디서도 물을 찾을 수 없지만, 혹 겨울철 태평양에서 오는 폭풍과 여름철 몬순 기후와 함께 오는 우기를 만나면 강물에 휩쓸려 익사를 당하기도 한다.

 

그토록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의 사막을 건너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주민들은 정치적 억압, 극심한 가난, 자연 재해, 범죄집단의 위협을 피해,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성들의 경우는 가정폭력을 피해 등 다양한 이유로 사막을 건넌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하는 이들을 상대로 국경을 넘겨준다며 장사를 하는 불법이주 브로커들을 “코요테”라고 부른다.  우리를 안내한 키노의 스탭 피트 신부님 (Father Pete Neeley, SJ)과 이니고씨(Iñigo Casares Pérez)는 이들의 조직과 규모로 볼 때 코요테라는 말보다 인신매매범들이라 불러야 한다고 정정했다. 이들은 사막이 끝나는 지점에 차를 대절해 국경검문소를 통과시켜주고 잠시 머물 수 있는 호스트들을 알선해 주는 댓가로 가난한 이주민들에게 돈을 받는다. 돈을 많이 내면 적게 걸을 수 있는 경로를, 돈을 적게 내면 멀리 돌아 가는 길을 알려준다. 이들에게 속아 돈을 다 지불하고도 사기를 당해 사막에 버려지는 이주민들도 많다. 이주민들을 노리는 것은 이들 인신매매범들 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자본주의도 개입한다. 순찰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위장복 (camouflage)과 빛에 반사되어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검은 플라스틱 물통,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 신발들이 대량 생산되어 이주민 시장을 장악한다. 조악한 옷과 신발들은 사막에서 채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거나, 밑창이 녹아 떨어져 나간다. 이주민들은 발바닥에 화상을 입고 가시가 박힌 채 사막을 걷는다.

 

이니고씨는 이주민들이 사막을 건널 때 흔히 소지하는 물품들이 들어 있는 배낭을 열어 그 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한 덧신, 갓난 아이를 위한 젖병, 도중에 사망하여 발각될 경우 신분을 알리기 위해 지참하는 졸업장, 성경책(놀랍게도 한국에서 출판한 스페인어 성경이다), 꼬마아이가 꼭꼭 눌러 쓰고 그림을 그린 친척에게 남기는 편지,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들어 있다. 사진마다 미소가 환하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의 기억들을 고르고 또 골랐을 것이다. 배낭에 들어 있던 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물품들이 아니라 간추리고 간추린 이주민들의 삶이었다.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을 듣다 아직 채 마개를 뜯지 않은 투명한 액체가 담긴 플라스틱 통에 이르러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술이었다. 짐을 하나라도 줄여 가볍게 만들어야 그나마 고생을 덜 수 있을텐데 왜 무거운 술을 배낭에 넣고 사막을 건널까? 우리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씻기 위한 용도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틀렸다. 선물용이라고 한다. 국경을 무사히 넘어 호스트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 감사표시로 전달할 선물이라고 한다.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차마 빈손으로 머물 수 없어서, 배낭의 부피와 무게를 적잖이 차지할 술을 넣는다. 목숨을 걸고 사막에 들어서는 그 순간에 조차 덜어 낼 수 없었던 인간의 존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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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 한시간 반 정도 이니고씨를 따라 사막을 걸었다. 가이드가 있는 안전한 “하이킹”이었음에도 나는 순간순간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두려움을 느꼈다. 그저 신발에 묻었을 뿐인 가시와 모래때문에 발바닥이 내내 따끔거렸다. 선인장과 자갈밭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이 곳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물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 만으로 숨이 막혔다.

 

 

마지스 키노 셋째날 (2024년 5월 13일)

 

국경을 넘었다. 미국 노갈레스에서 멕시코 노갈레스로, 산책하듯 넘었다. 반드시 여권을 준비하라고 인솔자가 두 세번 확인했지만, 미국에서 멕시코로 넘어가는 국경에는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권이 필요했던 것은 멕시코에서 미국 쪽으로 넘어 올 때였다. 시민권자가 아닌 경우 귀찮은 질문을 할 수도 있다고 미리 경고를 주었지만 경찰은 친절했다. 내가 경험한 친절은 물론 내가 가진 특권에 비례하는 것일테다.


키노에서 설립한 이주민 센터가 있는 곳은 멕시코 쪽 노갈레스다. 국경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다. 쉘터와 서비스센터를 겸하는 쾌적한 공간인데, 설립 초기에는 미국에서 송환된 이주민들을 위한 지원활동이 주된 임무였지만, 지금은 집을 떠나 노숙인이 되어 버린 난민신청 과정 중의 이주민들을 위한 지원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이곳에 오면 열흘 동안 머무르며 음식과 옷과 의료 서비스, 트라우마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기본적인 법률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열흘이 지나면 다른 쉘터로 연결해 준다. 난민자격 심사를 통과할 때까지 그렇게 이곳저곳으로 쉘터를 옮겨 다니며 지낼 수 밖에 없다. 몇 년 씩 걸리는 일이 허다하며, 끝까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늘부터 돌아가는 날 까지는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주민들과 직접 만나는 일정이 이어진다.


오늘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Voices of the Border』 (Georgetown University, 2023)의 저자인 인그라시아 수녀님 (Sr. Engracia Robles, M.E.)의 북토크였다. 오랜 시간 이주민들과 함께 하며 알게 된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이야기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믿는 나에겐 수녀님의 책이 무척 도움이 되었다.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우선,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이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는지  여쭈었다. 수녀님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조차 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끼곤 한다고 답을 하셨다.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처참하고 민감한 내용을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노출하는 일이 많아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권해야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조차 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다." 아프게, 오래, 이 말을 되새겼다.

 

오후에는 멕시코 쪽 노갈레스 다운타운을 돌아 보았다. 같은 동네임에도 멕시코 노갈레스는 미국 쪽 노갈레스와 확연히 달랐다. 가난한 동네에서 오히려 인간의 얼굴의 더 활기차게 드러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주유소와 프랜차이즈 음식점, 대형 스토어들이 드문드문 퍼져 있을 뿐,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 하나를 찾기 힘든 미국 쪽 노갈레스와 달리, 멕시코 노갈레스엔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연인을 앞에 두고 기타를 치는 청년이 있고, 즐비한 가판점엔 물건 흥정을 하는 사람들이 농담을 주고 받고, 싸구려 또띠야에 치즈와 살사를 듬뿍 뿌린 군것질 거리를 들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로 들썩거린다.

 

물론, 가난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가난 때문에 폭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삶,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야 하는 삶에 무슨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러나 몸과 마음을 처참하게 짓밟는 가난이 가르쳐 주는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서로 기대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내 존재를 하느님과 이웃에게 의탁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가난이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이며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그 간절한 바람을 부자들은 알 수 없다. 그렇게 서로 기댈 때만 만들어 낼 수 있는 저런 생생한 풍경들, 인간의 얼굴들은, 그러나 돈 앞에서 너무도 취약하게 무너지고 만다.

 

미국쪽 노갈레스에는 철조망이 감겨 있어 사람이 접근할 수 없지만, 멕시코쪽 노갈레스의 장벽에는 벽화가 있고, 예술작품들이 있다. 그리고 국경을 넘다 숨진 사람들을 기억하는 십자가들이 놓여 있다. 그 중에는 2012년 국경 순찰대에게 발각되어 16 발의 총을 맞고 사망한 16세 소년, 호세 안또니오 엘레나 로드리게즈 (José Antonio Elena Rodríguez)를 기억하는 십자가도 있다. 누군가가 화사한 꽃을 가져다 놓았다. 사진 속 소년의 얼굴은 맑고 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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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스 키노 넷째날 (2024년 5월 14일)


어제 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의식성찰과 나눔을 할 때 모두에게 고민과 갈등을 던져 준 질문이 있었다. 취약한 공동체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그 현장에 들어가서 보고, 느끼고, 성찰하는 현장학습 (immersion experience)이 그들의 삶을 허락 없이 훔쳐보는 관음증적 호기심(voyeurism)과 구분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일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특권과 편안한 삶을 포기할 의지는 전혀 없으면서 그들을 돕겠다고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선인가. 일말의 죄책감을 무마하고 "선한사람"이 되고 싶은 자기만족의 욕구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까. 나아가, 지식인인 우리가 취약한 공동체를 만날 때, 우리와 그들의 권력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우리는 식민주의자들이 범했던 지식의 착취와 오용, 권력화를 면할 수 있을까.


오늘 일정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순간들로 채워졌다. 투산에 있는 법정에 가서 국경을 넘다 체포된 이주민들의 재판 과정을 참관했다. 많이 불편할 것이라고 미리 주의를 받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불편함이었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다 국경순찰대에게 잡힌 이주민들이 집단적으로 범죄자로 분류되어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은 채 죄수 번호를 달고 법정에 앉아 있다. 번호를 부르면 일렬로 판사 앞에 선다. 미국인 판사가 영어로 유죄를 인정하느냐고 묻는다 (pleading guilty). 즉, “죄를 범했다”는 사실에 대해 자발적으로 동의하는지 (“freely agree,” “voluntarily admit”)를 반복적으로 묻는 것이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 통역사가 일일이 판사의 질문을 전달한다. 답은 정해져 있다. “Si (yes).” 이들이 무엇을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동의와 거부를 할 수 있을까? 형식적인 과정을 거쳐 선고를 받은 이주민들이 단체로 돌아서서 법정을 빠져나갈 때 나는 일부러 고개를 돌려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이방인에게 “범죄자”로 기억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참가한 프로그램을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현장학습이라 할 수 있을까?그들의 가장 수치스런 삶의 한순간을 허락 없이 “관찰”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현장학습”과 “관음증적 호기심” 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일지 질문하자 인솔자는 “공동체 성원들의 동의에 기반한 초대를 받았는가”의 여부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대답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한 일은 당연히 관음증적 호기심이다. 법정에 서 있던 어느 누구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정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닐지라도, 취약한 공동체가 “권리”로서 행할 수 있는 “초대”의 기준이란 얼마나 모호한가? 선한 이웃을 자처하며 가난한 삶의 치부를 들여다 보고 “자선을 베푸는” 프로그램 중에 공동체 성원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그에 기반해 동의를 얻고, 그 이후 도움을 넘어 우정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얼마나 될까?

 

키노 (Kino Border Initiative) 관계자들도 이런 불편한 질문들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키노 프로그램에서 “봉사”를 강조하지 않는 이유가 그제서야 명확하게 이해가 되었다. 키노의 미션은 HAC, 즉 Humanize, Accompany, Complicate를 원칙으로 한다. 이주민들의 얼굴에서 인간을 보며 (humanize), 그들의 여정에 개입하기 보다 동반하며 (accompany), 다양한 층위로 얽혀 있는 문제들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라 (complicate)는 것이다. “선한”의도라 할지라도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접고 일단 고난의 현장에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머무는 것, 그 과정을 통해 나의 특권을 깨닫는 과정이 없는, 그리하여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오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선은 자기만족일 뿐이며 결국 권력관계를 재생산할 뿐이다. 취약한 공동체를 동반하며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무엇을 할 수 없는가"이다.

 

법정 참관이 끝난 후에는 멕시코 영사관을 방문했다. 영사관 업무의 많은 부분을 국경을 넘다 실종되거나 상해를 입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업무에 할애하고 있었다.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성실함을 갖고 일하고 있는 진정성이 느껴졌지만, 한편 안타깝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이민자들에 대해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항의는 찾기 힘들었다. 두 국가 간의 권력 차이 때문이다.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하는 제도적인 폭력 뒤에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엄청난 경제적 격차가 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미국, 캐나다가 체결하고 멕시코가 합의한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은 세나라 교역 장벽을 단계적으로 없애고 “공정한” 경쟁조건을 확립하며 투자기회를 증대하고 지식 재산권 등을 보호하는 것을 기조로 한다. 특히 관세를 없애 물품과 용역이 세 나라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는데 역점을 두어 사실상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단일 경제권으로 묶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산 농산물과 공산품이 멕시코로 대거 유입되어 미국에 대한 멕시코의 산업의 인프라를 무너뜨리고 경제 종속을 심화하였으며, 공업과 농업 부문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이러한 무역 불평등은 멕시코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중남미 국가에 해당된다. 미국에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되는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국가간 불평등으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영사관 벽에 이주민 아이들 손으로 만든 나비가 붙어 있다. 나비는 이민자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삶을 찾아가는 나비. 그러나 나비는 자신의 날개를 볼 수 없다. 스스로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이민자들의 처지 또한 나비를 닮았다. 나비 날개에 적혀 있는 문구 하나가 마음에 머문다.

 

No es tu culpa.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마지스 키노 다섯 째날 (2024년 5월 15일)

 

키노센터에서 이주민들을 만나고 아이들과 함께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이주민들을 만나기 전, 지켜야 할 수칙들에 대해 미리 주의를 받았다.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말 것, 물건을 주고 받지 말 것 등 대부분 “바운더리”에 관한 것이다. 취약한 계층을 만날 때 바운더리는 양쪽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얼마만큼 경계를 두어야 할 것인지는 늘 어려운 문제다.

 

나는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외향적 에너지를 잘 쓰는 편이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때 친화력이 나쁘지 않다. 더구나 취약한 상황에 있는 이들을 만날 때는 지금은 옛일이 되어 버린 수도회 시절의 내가 상기되곤 한다. 그때도 바운더리에 대한 의식은 있었지만, 교육자, 연구자로서 취약한 이들을 만나는 지금의 나는 수도자로서 만날 때와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취약한 이들이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기도를 청하는 일들이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까지 이들의 민감한 삶의 이야기에 다가가야 하는지, 다가갈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전직이 간호사였던 E는 딸들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직장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렸다. 몇번의 난민자격 신청이 거부되었지만 손녀딸이 곧 공무원이 될 예정이라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나는 여름이 되면 안구건조증이 심해지는데, 엊그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눈이 뻑뻑해 통증을 느끼던 참이었다. E가 약초와 민간요법을 많이 안다고 하길래 방법이 있겠느냐고 여쭈었더니 꿀과 캐모마일 차를 섞어 눈에 대고 있어 보라고 하신다. 꿀은 없지만 호텔에 캐모마일 차가 비치 되어 있어 자기 전에 눈에 대고 있어 보니 정말 효과가 있었다. 오늘 다시 만나 감사 표시를 하니 얼굴이 환해지며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주신다. 물론 받아 적지 못했다.


가족들과 함께 난민신청 중에 있는 M은 영어를 약간 할 수 있는 분인데 엊그제 방문 때 전무하다시피 한 내 스페인어 소통을 도와 주셨다. 키노에 머문지 8일 째라 이틀 후면 떠나야 하는데 갈 곳이 없다 해서 기도를 약속했다. 오늘 다시 만나 인사를 하니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며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건넨다. 눈물이 왈칵 나올 정도로 고마웠지만 내가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담당자에게 확인을 해야 했다. 다행히 받아도 좋다고 해서 그림을 안아 들었지만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 뿐 답례를 할 수도, 연락처를 받을 수도 없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사랑”이란 법과 신분과 제도가 만들어 낸 바운더리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절대명령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말은 또 얼마나 거대한 폭력성을 포함하고 있는가. 권력 관계가 다른 두사람의 만남에서 경계를 열고 닫는 “허가”는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나아가, 새로운 삶의 기획이 불가능해 보이는 망가진 세상에서, 지식인이 관찰자이기를 그치고 동료 인간들의 고통을 통감하는 증인이고자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가? 지식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권력을 - 사회적 권력으로 부터 지적 권력까지 – 어느 정도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권력을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하는 말은 과연 정당한가? 


그토록 취약한 상태에 있지만 이곳에 머무는 이주민들이 잠시의 기쁨에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집중력은 놀라웠고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우리 팀이 준비한 네일 아트로 단장을 하고 미용 팩을 붙이고 모두들 즐겁게 오후를 보냈다. 덕분에 나도 손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그들의 즐거운 순간들에 함께 했다. 그러나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오늘 일정 중에는 키노에서 운영하는 그림방을 방문하는 순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세 루이스 소테로씨 (Jose Luis Sotero)는 수년 전 국경을 넘다가 체포, 구금되었다가 송환 되어 키노에 왔다. 그림을 배워 본적이 없는 그가 치유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전세계에 그의 그림을 전시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멕시코-미국 국경을 넘지 못한다. 우리가 산책하듯 넘었던 지척에 있는 그 국경을 말이다. 그는 키노 그림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고통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그의 고통이 그대로 그림이 되어 보는 이의 심장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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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스 키노 여섯 째날 (2024년 5월 16일)


M은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아내와 세 아이와 안정된 삶을 꾸리며 페인트 사업을 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어느 날 카르텔 (마피아 갱단)이 찾아와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업이 잘된다는 이유였다. 그가 살던 작은 마을에는 모든 것이 카르텔에 의해 관리된다. 경찰도, 관공서도, 카르텔의 권력망 안에 있다. 이웃이 매를 맞고 총을 맞아도 도울 수 없다. 그들의 눈 밖에 나게 되면 그 폭력이 내게 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M이 돈을 넘기지 않고 버티자 카르텔은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의 차를 추격하며 겁을 주고, 길에서 붙잡고 매질을 하다 급기야 총을 쏘았다. 중상을 입었지만 살아 남았다. 하지만 아들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협박을 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집과 사업장,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버리고 막내와 아내, 장애가 있는 큰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마을에는 결혼한 딸을 남겨 두었다.


난민 자격을 얻게 되면M이 가고 싶은 곳은 캘리포니아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은 고향이다. 고향에 돌아가 살다 거기서 묻히고 싶다. 태어나 자라고, 단란하고 소박한 꿈을 이루며 살던 그곳을 잊을 수 없다. 미국에는 범죄협박이 잦아들 때 까지만 머물고 싶을 뿐이다. 다만 살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 정부는 M가족에게 체류 자격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길에 버려졌다.

 

난민신청 과정 중에 있는 이주민의 증언이다. 증언을 하는 이주민들은 키노가 선별하고 초청하지만 물론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회의실에 들어선 이주민은 어제 내게 그림을 선물했던 M과 그의 아내 A였다. 사흘 동안 만나며 어느새 정이 든 그가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앉아 고통스런 이야기를 쏟아낸다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그 시간의 압박과 강도를 견딜 수 있을까. 증언 내내 울었다. 끝나고 나서 그가 오히려 나를 보고 “I knew Min-Ah would be a crybaby” 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울었다. 물론 그도 울었다. 우리 모두 울었다.


증언이 끝나고 이주민들과 함께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이들의 얼굴을 그려주게 되었다. 간단한 크로키 데생인데 손으로 끄적거리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하나 둘 줄을 섰다. 그림을 좋아하는 M이 관심 있게 지켜 보더니 아이들 틈에 줄을 서서 내 앞에 앉는다. 그의 얼굴을 그리며 오랫동안 그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통해 말로 다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삶을 회복하고 가족과 재회하여 살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의 집에 내가 손님으로 방문하는 날을 상상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가 얼마나 크고 넉넉한 가슴을 지닌 사람인지 안다. 그는 근사한 옷을 입고 푸짐한 식탁을 차리고 사람 좋은 그 미소를 지은 채 문을 활짝 열고 나를 맞을 것이다. 직접 고른 멕시코풍의 화려한 색을 골라 단장한 집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뿌듯해 할 것이다. 그의 아내는 직접 만든 엔칠라다와 마가리따를 건넬 것이다. 아이들은 어느새 청년이 되어 머쓱한 얼굴로 웃음을 나눌 것이고, 고향에 남겨 두고 왔다던 그의 딸은 MG의 손녀딸을 안고 인사를 건넬 것이다.


그런 날이 반드시 반드시 오도록 그렇게 하느님이 그의 길을 돌보아 주시고 우리의 길을 연결해 주시도록, 그가 사랑하는 과달루페의 성모님께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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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스 키노 현장학습을 마무리하며 (2024년 5월 17일)


국경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지난 6일 동안 나는 무엇을 원했던가. 무엇을 찾고 싶었던가.


인간의 얼굴을 한 하느님을 보고 싶었다. 처참하게 망가진 삶의 현장에서, 단 몇시간 후의 삶의 안정성 조차 찾기 힘든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나는 하느님을 보고 싶었다.


그 하느님은 인간의 욕망을 투사하여 만들어 낸 전지전능의 권력자, 힘의 위계질서 맨 꼭대기에 위치하여 그 권력을 모사하는 이들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하느님이 아니다. 그 하느님은 가장 가까웠던 이들에게 버림 받고 인간이 만든 법정에서 서서 아무 말도 못하고 “유죄판결”을 받아 들여야 했던 하느님이다. 그 하느님은 국경에 감겨 있는 철조망과 같은 가시관을 쓰고 뜨거운 사막에서 타는 듯한 갈증으로 죽어가며 “목마르다” 외치는 하느님이다. 그 하느님은 모든 것을 잃고 범죄자가 되어 치욕의 십자가에 매달린 채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는 하느님이다. 나는 그 무력한 하느님에게 대체 이 파국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힘 없는 당신께 기대어 있는 세상의 모든 힘 없는 사람들은 어디를 바라보며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답을 얻었는가? 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들이 품고 있는 피가 철철 흐르는, 그러나 활짝 열려 모든 것을 쏟아 내는 심장에서 어쩌면 내가 구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6일 동안 내가 만난 이들은 다 잃었음에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도움을 구걸하는 이들이 아니라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막을 건너 만나게 될 호스트에게 선물할 술을 무거운 배낭에서 덜어 내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기억하고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내게 당신도 내 기도 속에 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었고, 위선 혹은 자족과 별 구분되지 않을 우리의 짧고 보잘 것 없는 동반에 자신들의 백퍼센트를 던져 함께 웃고 기뻐하고 고마워 했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내가 고작 며칠 동안 발견한 모습이 그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거친 모습도, 실망스런 모습도, 의지를 잃고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모습도, 때로 선의를 이용하기도 하는 모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그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런 양면성 속에서도 바래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인간의 얼굴을 한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 신은 인간이 되어야 만 했던 것이 아닐까. 가장 가난한 이들, 모든 것을 잃어 버린 사람들 속에서 더 고결하게 빛나는 그 하느님의 얼굴 때문에 우리는 가장 희망 없는 곳에서 오히려 가장 빛나는 희망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지난 며칠 간, 나는 역설적이게도 행복했다. 나를 늘 짓누르는 자의식을 던지고, 두려움을 벗고, 그들의 마음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가 줄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줄 것이 없어서, 그래서 그들이 베푸는 것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5장 3절) 그들의 것인 하늘나라를 맛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Welcome to the United States. 그들에겐 거짓인 환영문구가 적혀 있는 국경을 다시 통과한다. 편안한 내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복잡하고 무겁고 미안하다.


이 불편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조민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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