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우리들의 성탄, 우리가 김용균이다!

김정대SJ 118.♡.21.101
2023.12.23 14:07 1,1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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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청년 노동자가 태안 석탄화력 발전소에서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지 5년이 지났다. 앞으로 어느 정도의 고통을 당해야 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김용균과 관계를 맺고 살았던 사람들이 지난 5년간 불안함, 답답함, 우울함과 같은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경험했다. 그들은 바로 김용균의 부모, 김용균과 함께 일을 했던 동료들이, 그리고 업무와 관련하여 김용균을 교육시켰던 사람들, 마지막으로 김용균의 주검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김용균 재단은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추모위원회를 구성해서 5주기 추모행사를 준비했다. 아마도 이 추모행사는 우리 사회에서 처참한 산재사고가 재발하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는 추모식인 한편 재발되는 참사를 끊어버리겠다는 기념이기도 하다. 재단은 지난 1120, 디엘이엔씨(구 대림산업, e-편한세상 시공사) 본사 앞에서 5주기 추모 기간 선포식을 가졌다. 이 선포식의 장소로 디엘이엔씨는 매우 상징적이다. 디엘이엔씨의 건설 산업 현장에서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올해까지 그 법의 존재를 비웃듯 7건의 산재 사망사고로 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은 국가와 재벌 기업의 보이지 않는 공모로 가능했다. 그러나 어떠한 처벌도 그들에게 가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재해는 반복된다.

 

추모위원회는 추모 기간 선포를 시작으로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다. 이는 단순히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해의 처참함에 대한 기억이고, 재해를 방치하는 무관심과 잔인함을 고발하는 것이며, 재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이고, 고통당하는 재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먼저 김용균 5주기 특별 전시, 유감이 영등포 문래동의 대안 예술 공간 이포에서 1124일부터 123일까지 있었다. ‘유감이란 표현은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자 측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하루에도 일곱 명의 노동자가 산재사망사고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은 매우 유감스런 상황이다. 그러나 유감입니다.’란 표현에는 그 말을 한 사람의 마음도 영혼도 없다. 그래서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인간관계 안에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인격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미안하다.’ ‘죄송하다.’란 말에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 노사관계라는 인간관계 안에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인격이 개입되어 있다면 산업재해는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사관계에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인격이 개입되어 있지 않으니 산업재해(産業災害)가 산재(散在) 한가운데 재앙은 계속 생산(産災) 된다. 이런 차원에서 122() 16:00-17:30에 같은 공간에서 진행된 산재 그리고 이야기- 산재한 산재, 産災는 의미 있는 토론회였다.

 

126()에는 김용균이 일하다 처참한 죽음을 당했던 태안 한국서부발전소 현장에서 추모식이 있었다. 그리고 129()에는 오전에 마석 모란공원에서의 추모식이 있었고 오후 5시부터는 서울 보신각 앞에서 김용균 5주기 추모대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모식 현장과 추모대회에 함께 했다. 같은 산업재해 피해자 가족들과 10.29 참사 피해자 가족들도 추모식에 함께해 주었다. 산업재해 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김용균 부모님의 상실감에 공감하고 연대하고자 참석했다. 이 마음은 사회적 참사 피해자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반복되는 산업재해와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참사에 대해 그 사회가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원인을 밝히고, 그 참사와 관련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고, 다시는 그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이들도 지금 이 시각 10.29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촉구하는 오체투지와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김용균 5주기 추모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예상치 않았던 김용균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묻는 대법원 선고가 127일로 잡혔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김용균의 처참한 죽음으로 산업안전법이 개정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그래서 노동자들, 특히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으로 일하다 죽지 않고, 차별받지 않도록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추모위원회와 김용균 재단은 이 마지막 판결에 기대하며, 재판부가 1,2심 판결과 달리 원청에 책임을 물어줄 것을 요구하는 60여 통의 편지를 모아 124일 오전에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편지를 재판부에 전달했다. 그런데 대법원 선고 당일, 불과 5-6초 사이에 내려진 판결은 기대에 찬 많은 사람들을 허무하게 했다. 이 외침이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처럼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외친 소리 같았고 소리 없는 메아리 같았다. 그리고 판결을 내린 사람들은 우리와 한 하늘 아래서 사는 존재들이 아닌 것 같았다. 하루에 일곱 명씩, 1년에 이천수백 명이 산업재해로 죽어야 국가 산업이 유지된다면 이는 야만이다. 사법부도 야만의 사회를 만드는 공범이다.

 

김용균 재단과 추모위원회도 김용균 5주기 추모행사의 주관자이지만 많은 추모대회 참가자들에게 꽃다지가 불렀던 전태일 50주기 추모곡인 아무렇지도 않은 듯을 합창으로 들려주며 참여했다. 이를 위해서 약 10여 명의 관계자들이 3-4차례의 모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연습을 했고, 추모대회에서 완벽한 실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족할 정도의 합창을 선보였다. 이 합창은 노래 가사의 비장함도 의미가 있었지만 김용균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기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본다.

 

5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이렇게 김용균은 다시 태어났다. 이 외침과 삶이 우리의 성탄이다. 우리의 성탄은 이렇게 허무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는 가운데 조용하게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쁨과 희망으로 다가온다. 사실 성탄은 그렇게 조용히,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하느님은 왔다.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는 성탄이 이미 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내가 김용균이다! 우리가 김용균이다!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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