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도대체 하마스는 왜 그랬을까?

김민SJ 118.♡.21.101
2023.11.29 17:26 1,2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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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 공격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물론 조짐은 있었다. 네탸냐후 정권은 자신의 부패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벌인 사법파동으로 인하여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 있었고, 네타냐후의 연정 파트너인 하레디-유대교 극우파- 정당은 예루살렘의 무슬림 성지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도발을 계속하고 있었다. 게다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정착촌. 따라서 웨스트뱅크의 긴장은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안 그런 적이 있었던가?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도발은 연례행사였고 정착촌 역시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어지고 있지 않았나? 그렇기에 이번 하마스 공격은 나에게 무척이나 놀랍게 다가왔다. 게다가 이번 공격 과정에서 보여준 극도의 잔인함은 무슬림에 대한 서구의 문화적 스테레오타입-인간의 목숨을 경시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다는-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여서 오히려 걱정될 정도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마스 지도부는 저런 테러 공격을 지시했을까?

 

 

왜 테러리즘인가?

 

테러리즘은 약자들의 무기이다. 물론 테러리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공포정치에서 나오긴 했지만, 군사학적으로 말하면 테러리즘은 대체로 약자들의 무기이다. 테러리즘 자체는 비정규전의 하위 범주로, 바로 곁에는 게릴라전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비정규전이란 정규전을 감행할 충분한 능력이 있는 세력에 대항하는 약자들의 선택지이다. 예컨대 임진왜란 당시 조총과 창병으로 대열을 갖춘 일본군에 대항하여 농민들이 숨어서 활을 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비정규전이다. 그리고 포병과 총병, 창병으로 완편 된 명군의 원정군에 대항해 만주의 산그늘에서 숨어 기회를 엿보며 돌격해서 화살을 퍼부을 준비를 하는 만주팔기의 병사들, 이런 것이 비정규전이다. 그리고 도로의 중요한 체크 포인트에 박격포와 기관포를 거치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유개호 속에서 담배 한 대 빨고 있는 미군을 향해 언덕에서 조심스레 칼라시니코프를 겨냥하는 탈레반 전사, 이런 것이 비정규전이다.

 

비정규전은 비대칭적인 두 세력 가운데 충분히 머리가 돌아가고, 그리고 충분히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고, 충분히 잔인하고도 비열하게 적들을 물어뜯을 준비가 된 약자가 선택하는 오래된 전술이다. 그런 점에서 하마스가 107일 가자지구를 감시하는 이스라엘 정찰 자산을 피하여 조심스럽게 침투하여 민간인들을 죽이고 납치하는 것 역시 약자들의 전쟁법이다. 더럽기 짝이 없는 전쟁법이지만 우리는 지난 수천 년 동안 강자들을 맞이하여 그렇게 싸워왔다.

 

테러리즘은 뚜렷한 목적의식 하에서 실행되는 전쟁의 기술이다. 결코 무분별한 폭력의 향연이 아니다. 모든 군사 조직은 폭력이 통제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통제되지 않은 폭력이 군사 조직의 응집력을 와해하고 그럼으로써 조직원들이 조직의 목적이나 목표가 아닌 폭력 욕구의 발산을 꾀하는 잘 무장된 또라이 집단들로 변해버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국제정치의 고전이자 교과서인 International Relations(10, 2013-2014)에서 조슈아 골드슈타인과 존 피브하우스는 이렇게 테러리즘을 정의했다. “테러리즘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민간인들을 노린 정치적 폭력이다. ... 게릴라전 이상으로 테러리즘은 얼굴 없는 적들의 어둠에 잠긴 세상이며 극도의 잔인함의 특징을 갖는 비정규전 전술이다.” 이어서 그들은 테러리즘의 목적을 민간인들의 사기를 저하시켜 자신의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

 

여기에서 핵심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 테러리즘의 대상은 민간인이라는 것. 바로 이것 때문에 테러리즘은 전쟁범죄로 규정된다. 그리고 아서 해리스(2차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폭격기 사령부 사령관)와 커티스 르메이(태평양 전쟁 당시 미 육군 항공대 폭격기 부대 사령관)의 전범론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이유이다. 두 번째, 테러리즘은 정치적 심리적 폭력이라는 것. 즉 테러리즘은 상대방에게 정신적 충격을 가하고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수단이다. 세 번째, 여론 형성의 수단이라는 것. 정리하면 테러리즘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충격을 상대방에게 가하고 그 잔인함으로 심리적 충격을 가하여 민간인들로 하여금 자국 정부에 대하여 압력을 가하도록 만드는 수단인 셈이다.

 

물론 테러리즘은 비정규군의 전유물인 것만은 아니다. 대개 정상적인 군대는 적국이라도 민간인 살상을 전쟁범죄로 강력하게 단속하고 처벌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정규군도 테러리즘을 비정규군이나 상대 정규군에 대항하여 활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20091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UNRWA)에서 운영하는 두 개의 학교에 이스라엘군이 백린탄을 쏘아대는 미친 짓을 벌였을 때, 이 사건들이 크게 문제가 되었던 이유가 국가에서 대놓고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테러 행위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군대의 범죄행위가 대개 개인이나 소부대의 일탈인 것에 반하여 155mm와 같은 중화기를 이용한 백린탄 포격은 결국 의도적으로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민간인들을 노린 정치적 폭력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침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테러리즘은 정상적인 군대에서는 전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잃을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는 약자들이 눈이 돌아갈 때 테러리즘은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인다.

 

 

테러리즘은 무엇인가?

 

유목민 역설 nomad paradox’라는 것이 있다. 역사가 휴 케네디의 개념인데, 그는 유목민과 농경 제국 사이의 전쟁을 연구하면서 유목민 역설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농경 제국의 군사력은 전문적이고 점령전에 특화되어 있다. 이 말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이다. 이들의 전쟁법은 기병, 궁병, 창병 등과 같이 전문화된 병종과 이들을 유지하기 위한 보급과 행정체계를 갖추고 상대방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강요한다. 이들은 상대방의 영토에 쳐들어가서 점령전을 행한다. 요새를 건설하고 수비군을 둔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은 회전을 강요받게 되는데, 이 회전이야말로 정착 제국들이 가장 강점을 보이는 전쟁법이다. 회전에서 상대방의 주력을 섬멸하면 점령전은 완성된다.

 

반면 유목민은 영토에는 관심이 없다. 이들의 무기는 전문화된 병종이나 정교한 보급체계가 아니다. 이들은 안개처럼 흩어져서 전선 형성을 피하며 상대방의 배후에 나타나 보급로를 파괴하고 보급품을 약탈한다. 비정규군의 아르케 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목민의 전쟁법은 상대방의 선택지를 하나씩 지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소부대는 박살 나고 대규모 부대는 보급 실패로 인하여 굶어 죽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안개처럼 흩어진 유목민들의 소부대들을 섬멸하기 위해 부대를 쪼갠다. 이게 가장 바라는 바이다. 쪼개진 부대는 기동성의 우위를 살린 유목민들에 의해 하나씩 섬멸당한다. 카르헤 전투에서 로마군이,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 왕국이, 만지케르트에서 동로마군이, 사르후에서 명군이 이런 식으로 유목민들의 군대에 의해 섬멸되었다. 문제는 이때 역설이 발생한다. 유목민들이 정착민들의 제국을 점령하면 그 점령지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정착민들이 밟았던 바로 그 길, 정규군의 길을 걷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목민 역설이다.

 

테러리즘 역시 유목민 역설에 갇혀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테러리즘은 뒤가 없는 이들, 극도로 비대칭적인 힘의 역학관계 속에 갇힌 이들이 필사적으로 선택하는 전술이다. 하지만 비정규전이든 정규전이든 전쟁은 기본적으로 비용이 너무나 많이 드는 일이다. 게다가 생산성 자체가 전무하다. 예전처럼 활과 칼로 싸운다면 그나마 비용이라도 아낄 수 있지만 하마스가 사용하는 소총과 대전차 미사일, 가성비로 따지자면 세계 제일인 카삼 로켓(그래도 한발당 대략 80만 원이다.) 모두 돈을 빨아먹는다. 아무리 거적때기를 걸친 비정규군대라도 돈이 없으면 그 거적때기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역설을 타개하기 위해서 돈줄이 필요하다. 바로 이 이유로 인하여 하마스는 이번 테러 공격을 기획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군대의 보이지 않는 무기

 

테러리즘의 심리적 효과와 정치적인 목적은 여론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만날 때 서로 만나게 된다. 가장 고전적인 것이 미국의 독립전쟁이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영국군과 미국의 독립군이 라인을 만들고 머스킷을 난사하는 그런 유럽식의 전쟁이 아니었다. 미국의 독립군은 정규군처럼 행세할 때는 거의 여지없이 영국군에게 패배했고 게릴라전술을 사용할 때만 영국군의 피를 더 많이 흘리게 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프랑스군의 개입이 독립전쟁의 분수령으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분수령은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토마스 페인의 Common Sense라는 이름의 정치 팸플릿의 영향으로 영국의 여론이 바뀌고 1782년 영국의 하원이 더 이상의 군사작전을 위한 예산집행을 거부했을 때였다.

 

맥스 부트와 같은 전쟁사학자들은 전술가나 전략가들이 종종 간과하는 전쟁의 비물질적인 차원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여론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하마스 역시 이 교훈을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마스의 테러 공격이 여론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하마스는 자신의 공격이 이스라엘에게 유일한 선택지를 강요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은 척수반사적으로 가자지구 침공을 감행하였다. 수많은 지하 터널 네트워크가 있고 반경 1km16,853명이 오밀조밀 살고 있는, 그리고 무장요원과 민간인들의 구분조차 어려운 바로 그곳을 침공하였다.

 

이제 이스라엘은 외통수에 몰리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가자지구에 투입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 당연하게 가자지구에 갇혀있는민간인들이 엄청나게 희생되면서 하마스 공격 이후 비등했던 반테러리즘 여론은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반등되었다. 국제여론의 장에서 하마스는 은근슬쩍 사라지고 친유대주의와 반유대주의라는 서구의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래된 증오게임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내가 우려했던 무슬림에 대한 서구의 스테레오 타입의 강화와 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무슬림 혐오는 의외로 두드러지지 않고 유대 혐오가 뜻밖에도 튀어나오고 있다. 하마스는 왜 그랬을까? 비대칭적인 힘들의 장 속에서 강력한 상대방의 선택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강요하기 위해서.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상대방 역시 진창 속으로 미끄러지게 만들기 위해서. 하마스의 이 선택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다만 그 합리성이 참으로 부조리할 따름이다.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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