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Memento Mori! 방영환 택시 노동자의 죽음에 부쳐

김정대SJ 118.♡.21.101
2023.11.23 10:00 9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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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26, 해성운수 택시 노동자 방영환 님이 서울 양천구 소재 회사 앞에서 택시 완전 월급제와 임금체불 해결 등을 요구하며 227일 동안 이어온 1인 시위 끝에 분신했다. 그리고 10일이 지난 106일 끝내 숨졌다.

 

공공운수 노동조합은 지난 112방영환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공운수 노조 결의대회를 가졌다. 그리고 1115일에는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이 해성운수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도록 요구하는 23일 일정의 오체투지를 기자회견과 함께 시작했다. 나는 종교인으로서 그 두 행사에 발언자로 초대받았고 짧은 구간의 오체투지도 함께 하였다.

 

법인 택시 기사의 임금으로 완전 월급제가 제정되어 20201월부터 시행되었다. 과거 법인 택시 기사의 임금체계는 사납금제, 택시 기사는 매일 운행 수입의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초과분만을 수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이 많다면 택시 기사는 사납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승객이 없어 운행 수입이 사납금보다 작은 경우에는 기사는 그 부족분을 사비로 채워 넣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서 기사들은 난폭운전과 장시간 운전과 같은 무리한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폐단이 공론화되면서 택시 기사의 월급제가 제정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법인 택시 기사의 월급제는 매우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난폭운전과 장시간 운전은 사고의 원인이 되며, 소비자인 승객도 그 사고로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택시 기사 임금은 변형된 사납금제 형태가 유지되면서 법으로 정한 완전 월급제는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고 방영환 택시 노동자는 과거 변형된 사납금제를 골자로 하는 근로계약서가 최저임금법 등을 위반하므로 서명하지 않았고, 이를 이유로 회사는 그를 해고한 일이 있었다. 202211, 그가 복직되었을 때 회사는 그에게 새로이 근로계약을 맺기를 원했지만, 그는 완전 월급제가 아닌 고용조건이라는 이유로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고 완전 월급제와 임금체불 해결등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돌입했다. 그리고 227일째 되던 926일 그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나는 너무도 안타까운 그의 죽음 뒤에 우리 사회의 야만을 본다.

 

고 방영환 택시 노동자는 회사에 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시위했다. 회사 대표는 그런 그를 폭행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이는 명백한 폭력으로 가장 사악한 범죄이다. 그 회사 대표는 자신이 행한 그 폭력이 자신의 자식에게 대물림될 수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즉 그는 자신의 자식에게 범법행위를 전수하는 것이다. 이는 한 성직자가 그에게 내리는 저주가 아니다. 이는 경험적인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요즘 학폭이 문제가 되고 있다. 누가 학폭의 당사자들인가? 많은 경우 권력을 가진 사람들, 특히 폭력적인 권력 행사가 문제가 되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그 당사자들이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자신의 책, <도덕 정치를 말하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에서 아이들이 학대와 벌, 그리고 폭력이 권위를 부여하고 존경을 강요하는 방법이라고 배우게 된다면 그들은 그 행동을 재현할 것이고, 그 결과로 폭력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폭력을 넘어 공인으로서의 폭력은 우리 사회를 폭력의 악순환으로 만드는 반사회적 행위이다.

 

우리 사회의 야만성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보이는 권력의 모호함에서도 비롯된다. 우리 사회에 노동자를 위한 좋은 법은 거의 없다. 고 방영환 택시 노동자는 그 법의 부당함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부족한 법이지만 그 법대로 우리 사회가 돌아가길 바라며 시위를 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위법적인 불이익과 사악한 범죄인 위협과 협박이었다.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권력은 이런 위법과 불법을 바로잡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가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그 권력의 모호함에 분노한다. 이 권력이란 경찰, 근로 감독을 하지 않은 노동부의 공무원과 서울시의 이 문제와 관련 공무원들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 아닌 야만스러움을 본다.

 

공공 운수 노동조합의 결의대회가 있었던 112일은 가톨릭교회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위령의 날이었다. 이날 가톨릭 신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도록 기도한다. 그러나 이날은 단지 세상을 떠난 사람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다. 이날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날이기도 하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여라!)” 우리가 죽음을 의식한다면 우리는 겸손해진다.

 

저세상에서 (심판관들 앞에서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그러한 시험들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이미 이 세상에서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살아 있을 때 그런 주문들을 배우고 익히는 사람은 죽은 다음에 저세상의 심판관들을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게르하르트 로핑크, <죽음, 부활, 영원한 생명 바로 알기>) 그러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길 바란다. 그래서 더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올바르게 권력을 사용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면 함께 사는 사람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세상을 떠난 방영환 택시 노동자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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