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폭력과 침묵 사이, 팔레스타인 문제

박상훈SJ 118.♡.21.101
2023.11.06 17:11 1,52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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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9세기에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했던 랍비 힐렐은 유대인 생활양식의 중심은 윤리에 있다고 했다. 윤리는 삶에 붙어있는 장식이 아니라, 사람이 잘 살아가는가 아니면 파괴되는가를 결정하는 힘이다. 지금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윤리의 부재가 아니라, 뒤틀리고 왜곡되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다시 쓰이고 있는 윤리의 전도(顚倒)다. 팔레스타인이 전쟁폭력의 끔찍한 혼돈과 절망, 한 가운데 내던져 있다. ‘10월 7일’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충돌한 사건이 아니다. 75년 넘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가능한 많은 땅을 확보하고 동시에 가능한 적은 수의 팔레스타인 사람을 남기기 위해, 추방하고, 점령하고, 학살했다.

 

이런 죽음충동 배면에는 1948년까지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했던 영국을 비롯한 서방 제국들의 무모하고 집요한 중동 지배 전략과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두 축으로 하는 시오니즘의 결합이 있다(그리고 시오니즘은 유대교가 아니다). 시오니즘은 수 세기에 걸친 박해로부터 새로운 피난처를 찾으려는 유럽 유대인들의 열망으로 시작되었다. 이 열망은 서구 제국의 도움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영토를 획득하자마자 곧 식민주의로 변모했다.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계획은 이전 영토의 절반도 안 되는 서안과 가자 지역으로 결정됐고, 아랍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이스라엘은 15,00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였고, 75만 명을 추방했으며, 영토의 80%를 점령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1948년의 나크바(재앙)라 부르는 학살이다. 지금 그 후손들 6백만 명이 난민으로 세상을 떠돌고 있다.

 

지배자의 욕망과 히스테리는 끝이 없다. 특히 가자 지역은 2000년대에만 네 차례에 걸친 집중적인 군사 공격으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망했다. 군사 폭력과 더불어 ‘정착촌 식민주의’라는 강제와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을 확장해 팔레스타인 사회를 붕괴시켰다. 가족을 떼어놓고, 시민적, 법적,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부정하고,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땅과 집을 몰수하고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뿌리째 뽑았다. 여기에 더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아무것도 아니며, 존재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로 만드는, 정교하지만 역겨운 신화와 이념을 만들어 냈다. 팔레스타인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현대 유대인의 삶을 구성하는 역사에는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이스라엘 국가의 창건이 각별히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역사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고 강탈한 폭력도 포함되어 있다. 유대인의 현실은 원하든 아니든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유대인이자 ‘가톨릭 워커스’의 일원이며 유대교 해방신학자인 마크 엘리스는, 타인들이 고통받는 동안 어떻게 유대인들이 자신의 ‘유대인다움’을 축하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유대인의 윤리적 전통과 하느님과의 거룩한 약속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인가? 유대인의 주권과 권력, 그리고 유대교의 윤리와 영성은 이제 전면적인 쇄신이 없다면 더 이상 양립할 수 없을지 모른다. 역사의 기억은 반성과 관용과 인정으로 모아져야 하지 파괴와 멸시와 부인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미래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억압과 강탈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종말일 것이다. 하마스의 민간인 살해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병원, 학교, 성당, 유엔 시설, 거주지역을 무차별 폭격하며 희생자 가운데 1/3인 어린이를 포함해 벌써 9,000명 이상을 살해한 이스라엘의 잔혹한 복수를 용인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명백한 불의이며, 하려고만 하면 피할 수 있는 학살이다. 그러니 이제, 왜 선의의 사람들조차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억압, 불의에는 반대하면서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똑같은 일은 은폐하고 옹호하는지 물어야 한다. 이 의도된 침묵은 무엇인가?  

 

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이번 칼럼은 가톨릭평화신문 '시사진단' 코너에도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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