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과학은 폭력이 되고

조현철SJ 121.♡.235.108
2023.09.08 15:25 1,340 0

본문

 

제목 없는 디자인.png

 

마침내 824일 오후 1, 일본 정부가 자국 어민과 주변국의 비판과 우려를 무시하고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를 시작했다. 오염수 방출은 앞으로 30년가량 걸릴 것이라 하지만, 지금도 계속 오염수가 생기고 있어서 실제로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 정부도 미국 정부도 그리고 한국 정부도 방사성 오염수 해양방출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고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IAEA의 검증 결과를 방출의 정당화 근거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여론은 80%가량이 오염수 방출에 비판적이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이를 괴담으로 치부한다. 윤 대통령은 방출에 부정적인 압도적 다수의 국민을 “1 더하기 1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며 싸울 수밖에 없다고 공격한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는 제쳐두고라도, 대통령을 위시해 정부 여당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IAEA의 검증은 과연 과학적이고, 과학적이면 모든 논란은 사라져야 하는가?

 

얼마 전 한국 연구진이 꿈의 물질로도 불리는 상온 상압 초전도체(LK-99)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관련 논문 2편을 사전출판논문 누리집 아카이브에 올렸다. 전 세계에서 관심이 폭발했고, 다른 연구자들이 검증에 들어갔다. 논문에 제시된 방식으로 합성한 물질이 동일한 초전도성을 보이는지 확인한 검증 결과는 개발 주장에 부정적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LK-99짧고 화려했던 삶이 끝났다고 전했다.

 

여기서 검증의 핵심은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같은 결과를 얻는지 확인하는 보편적 재현성이다. 그래서 제3자 검증은 과학적 검증의 기본이며 여기에 필요한 모든 자료는 공개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지난 7월 초에 나온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에 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종합보고서는 과학적 검증의 종결이 아닌 시작이다. 아직은 오염수 방출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IAEA의 결론밖에 나온 게 없기 때문이다(보고서 v). 교차 검증을 받지 않은 IAEA일방적주장만 있는 셈이다. IAEA 검증팀에 여러 나라의 전문가가 참여했다지만 자문역으로 참여한 외부 전문가들이 제3자 검증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가 정말 과학적 근거로 오염수를 방출하려면, 방출 설비와 오염수 시료 등 검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개하여 독립적인 외부 기관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나 홀로검증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때, 과학은 폭력이 된다.

 

윤석열 정부는 IAEA의 검증 결과를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한다. IAEA가 권위 있는 국제기관이니 그 결론을 믿겠다는 논리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논리다. 지식에 관한 한 과학은 모든 권위에 도전한다. 과학은 권위가 아닌 사실에 기초해 지식을 생산하고 정화하는 과정이자 노력이다. 기존의 업적으로 쌓은 권위는 존중해야 하지만, 권위가 검증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권위는 검증을 외면할 때 실추하고, 존중할 때 높아진다. 검증되지 않은 권위 있는 기관의 주장을 과학적이라며 믿음을 강요할 때, 과학은 폭력이 된다.

 

IAEA의 권위 자체도 문제다. IAEA가 핵에너지 사용을 촉진하고 확산하는”(헌장 제2) 진흥기관이라는 사실은 오염수 처리에 관한 이 기관의 권위에 강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 이미 2015년에 이 기관은 오염수 해양투기를 긍정하는 견해를 밝혔다. IAEA가 행한 검증의 객관성은 존중이 아닌 검증의 대상이다. 종합보고서의 검증 방식과 내용도 IAEA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IAEA는 주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제공한 문서의 분석을 통해 검증했다고 한다(7). 일종의 간접 검증인 셈인데, 이걸 ‘IAEA’ 검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노심용융을 5년이나 숨겼고 2019년과 2021년에는 다핵종저감장치(ALPS)의 흡착 필터 파손을 숨겼던 전과가 있다. 도쿄전력의 자료는 검증의 전제가 아닌 대상이다.

 

IAEA는 일본 정부가 검증 의뢰 전에 오염수 방출을 결정했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안전 원칙인 정당화(방출의 득이 실보다 커야 한다)’에 관해 평가하지 않았다(18-19). 20223월과 10, 오염수 시료를 3개의 탱크에서 채취했으나 이번 보고서에는 1차 시료 분석 결과만 있다. 2/3차 시료 분석과 안전성 판단에 핵심적인 환경 모니터링 결과는 2023년 하반기에 나온다고 한다(107-108). 이걸 종합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까. 보고서를 오염수 방출 시점에 맞췄다는 의혹이 나올만하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핵심 설비인 ALPS의 성능 검증이 없다는 거다. 한마디로, ‘깡통 검증이다.

 

권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IAEA이 보고서의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했다(표지). IAEA 사무총장은 오염수 방출은 일본 정부의 국가적 결정이며 종합보고서는 방출 정책의 권고도 승인도아니라고 강조한다(iii). 깡통 검증이라 그랬겠지만, 책임과 함께 권위도 실종됐다. 오염수 방출을 권고도 승인도 않겠다는 이 보고서는 윤석열 정부가 오염수 방출에 동의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실종된 권위로 흠투성이 검증을 과학적이라고 강변할 때, 과학은 폭력이 된다.

 

과학적 검증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우리는 삶의 문제를 과학적 합리성만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과학과 함께 상식과 윤리와 같은 다른 사안도 고려해야 한다. ‘더 안전한 처리 방법이 있는데 왜 바다에 버리지?’ ‘정말 안전하다면 일본 내에서 처리하면 되지.’ ‘우리나라는 80% 이상이 반대한다는데.’ ‘안전하다고 아무 데나 버려도 되나?’ ‘런던협약 위반인데.’ 이 모두가 괴담이 아닌 상식적인 우려와 의문이다. 상식이 받아들이기 힘든 과학적 안전을 강요할 때, 과학은 일상의 폭력이 된다.

 

 

조현철(예수회 신부, 서강대 교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