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과 사회적 맥락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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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께 복음 말씀을 듣고 병의 고통을 치유받기 위해 예수께서 머무시는 곳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어느 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복음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들것에 뉘어 데리고 왔다. 그들은 붐비는 인파를 헤치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수 없어서 그분이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내려보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여 중풍병자에게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치유해주었다. (마르코 2, 1-5)
이 짧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겪는 사회적 맥락의 고통과 치유, 그리고 치유의 핵심으로서의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이해하게 된다. 사실 많은 경우 환자들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육체적인 아픔보다 외로움과 우울함과 같은 마음의 아픔을 더 경험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원인 모를 고통을 떠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운데 타인과 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해 더 큰 고통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맥락의 고통’이다. 주변의 사람들과 사회가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앞으로 이런 고통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한다면, 그들은 미래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사회적 맥락의 치유’이다. 이 치유의 핵심이 바로 용서인데, ‘용서’란 그들이 경험하는 원인 모를 고통이 그들의 책임이 아님을 공감해주는 것이다. 이 용서를 통해 그들이 겪는 고통은 한결 가벼워질 수 있고, 그들은 그 고통을 감내할 힘을 얻게 된다.
지난해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은 상상하지도 못한 일로 사랑하는 자녀를 잃었다. 대통령은 신속하게 사건 현장 방문, 유감 표명, 애도 기간 선포 등을 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은 유가족들은 가족과의 사별로 인한 상실감과 슬픔을 보듬지도 못한 채 떠밀리다시피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1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정부가 진행한 참사의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은 거의 없다.
겨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만 진행됐다.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정당에 따라선 진실을 밝히려는 마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무력감을 겪어야 했다. 그나마 10일간의 연장 조사가 이루어진 후에도, 여당이 참여하지 않은 채 야 3당만이 보고서를 채택하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했기에 참사 원인도 분명치 않고 참사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아픔에 더해 억울함까지, 현재와 미래의 고통을 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2차 가해이고, 그들이 겪는 사회적 맥락의 아픔이다.
지난 2월 5일, 유가족들은 참사 발생 100일 추모식을 국회에서 진행했다. 그 전날 유족들은 서울시에 광화문 광장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며 희생자들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녹사평 추모 공간에서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유가족들은 그 자리에 올 수 없는 유족들을 대신해, 각 종교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영정을 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나도 그 행진에 참여해 가족들이 무척 사랑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얼굴의 청년 영정을 들었다. 그때 내 마음은 복음서의 ‘네 사람’처럼 유가족의 고통을 나누어지려는 마음이었다.
행진하며 진행자는 유가족들의 요구가 담긴 구호를 외치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불렀다. 우리는 구호의 마지막을 세 번 반복해서 외쳤고,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면 “기억하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나는 몰려 올라오는 슬픈 감정 때문에 가끔 구호를 크게 외치지 못하고 아주 작은 소리로 겨우 따라 했다.
행렬이 용산 대통령실을 지날 때 몇몇 유가족들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했다. 이 행렬은 서울역을 거쳐 시청 청사가 있는 서울광장에서 멈췄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서울광장에 추모 공간인 분향소를 설치했다. 경찰과 시청 직원의 교묘한 방해가 있었지만, 분향소는 잘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해산하라’는 낯익은 남대문경찰서 정보과장의 방송이 앵무새처럼 여러 차례 반복됐다.
현장에 경찰과 시청 직원이 나와 추모 공간 설치를 방해했지만,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정말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했다.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실을 묻어 버리고,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짓밟으려 했다. 심지어 서울시는 6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며 자진 철거를 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계고장을 발송했다.
이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묻고 사회적 맥락의 아픔을 방치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행위다. 그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존재해야 할 경찰과 서울시가 거꾸로 시민들을 협박하는 행태를 보이니,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이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참담함을 느낀다. 그 가운데 유가족들을 위한 사회적 맥락의 치유 가능성은 희박하고 다만 과거의 아픔과 함께 사회적 맥락의 아픔인 현재와 미래의 아픔만 존재하고 있었다.
사회적 맥락의 아픔이 공유되지 않고 그래서 사회적 맥락의 치유가 가능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누구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픔을 만져주고 사회적 맥락의 치유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유가족들에게 사회적 맥락의 치유가 이뤄지도록 하려면 서울시 행정 책임자와 더 나아가 정부의 참사 관련 부서 책임자가 그들의 아픔과 억울함을 들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유가족들이 경험하는 고통이 그들의 책임이 아님에 공감해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서울시는 유가족들이 추모 공간을 광화문에 마련하겠다고 밝혔을 때, 일방적으로 이를 허가할 수 없음을 통보했다. 이렇게 일방적인 소통을 할 게 아니라 어디에 어떤 형태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은지 적극적으로 상의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아픈 마음에 더 깊이 공감하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권위적 방식을 걷어치우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접근해 추모 공간과 관련해 희생자 유가족들과 논의해야 한다.
김정대 신부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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