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빛이 있는 곳에 어둠도 있다: 솔리나스 시복에 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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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나스 신부와 사라테 신부의 시복의 의미
2022년 7월 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후안 안토니오 솔리나스 신부와 페드로 오르티스 데 사라테 신부를 시복하였다. 예수회원 솔리나스 신부와 교구사제 사라테 신부는 1683년 10월 27일 지금의 아르헨티나 지역에서 선교를 하다가 원주민들에게 살해되었다. 시복에 앞서 예수회 총장 아르투로 소사 신부는 6월 24일 모든 예수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시복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했다.
우선 솔리나스 신부와 사라테 신부의 시복은 “예수회와 교구가 긴밀하게 협업을 하였던 ... 교회의 협력 프로젝트와 사명”을 상징한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의 복음화는 남미의 남단 파타고니아 지역까지 확대되고 있었는데, 이 광활한 지역에 흩어져 사는 원주민들을 사목적으로 돌보기에 선교사들의 인력풀이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따라서 예수회는 교구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원주민에 대한 사목적 돌봄에 전념하였는데, 솔리나스 신부와 사라테 신부의 공동 사목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두번째로 솔리나스 신부와 사라테 신부의 사명은 “다양한 집단들을 화해시키고 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자신들을 공격한 이들을 용서”하는 화해의 사명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르투로 소사 총장은 당시 아르헨티나 지역이 유럽인 식민자들과 원주민들의 무력충돌로 쑥대밭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솔리나스 일행이 “원주민들과의 평화를 가져오고 크레올-유럽혈통의 식민자들-과 원주민 사이의 화해를 주선”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솔리나스 신부와 사라테 신부,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스페인과 원주민 출신의 평신도들이 살해당한 직후 스페인군이 이들을 공격한 원주민들을 징벌하려고 했을 때, 솔리나스 신부의 동료 예수회원이 이렇게 말하며 군대를 말렸다고 한다. “불신자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온 것이지 죽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솔리나스 신부의 시복에 대한 예수회 총장 아르투르 소사 신부의 평가는 솔리나스 신부의 삶을 반추하면서 오늘날 예수회와 교회에 필요한 정신을 발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서지고 흩어진 세상에서 복음의 가치를 다시 소생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힘을 모으고 협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부서지고 흩어진 세상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화해의 사명이라는 것.
라틴 아메리카의 ‘아래로부터의’ 예수회 선교
이러한 평가와 더불어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메리카에서의 예수회 선교의 또 다른 이면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 확실히 아메리카의 예수회 선교는 아시아에서의 예수회 선교방식과는 남다른 부분이 있었다. 인도와 중국, 일본에서의 예수회 선교가 현지의 관습과 전통을 존중하는 이른바 ‘적응주의’ 선교방식과 지배계급의 호의를 사는 방식의 ‘위로부터의’ 선교방식을 따랐다면 라틴 아메리카의 예수회 선교는 원주민들의 공동체를 조직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예수회 선교의 뚜렷한 특징은 원주민들을 노예화하는 식민자들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1630년대 예수회원들은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이 과라니족들을 계속해서 노예화하는 것에 대항하여 레둑치오(reducció)라고 불리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과라니족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문화를 보존하려고 하였다. 예수회원 루이스 데 몬토야(Ruiz de Montoya)는 “영혼의 정복(Conquista Espiritual)”에서 상세하게 예수회가 어떻게 과라니족들을 보호하려고 했고 그 와중에서 브라질의 포르투갈 식민자들과 충돌했는지 묘사한 바 있다.
두 명의 사제와 두 명의 평수사가 그곳[헤수스 마리아 레둑치오]에 있었는데, 이들이 있던 곳은 곧 총탄이 난무하는 현장이 되었고, 이들은 형제들과 인디오들이 선교지역의 정당한 방어를 위해 전념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제들은 이들을 격려했다. 이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두시까지 6시간동안 전투를 계속했다.
Ruiz de Montoya, Conquista espiritual, cap. 75.
원주민들을 둘러싼 예수회 선교사들과 포르투갈 식민자들/노예상인들과의 충돌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는 영화 ‘미션’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선교의 그림자: 동화주의
여기에서 우리는 솔리나스 신부의 시복이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복음화라는 예수회의 고유한 사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예수회의 복음사명이 그렇게 원만하게 흘러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선교 혹은 다른 민족의 복음화가 갖는 어떤 어두운 부분이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예수회의 선교는 그곳의 유교 문화를 존중하고 이들의 언어로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번역하고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예수회 선교는 매우 독특한 독자적인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예수회 선교는 사정이 달랐다. 레둑치오의 공간적 중심은 서구식 성당이었고 인디오들은 그곳에서 서구식 교육을 받았다.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의 선교, 특히 예수회 선교방식이 원주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문화를 보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예컨대 루이스 데 몬토야는 레둑치오 안에서는 과라니어만 사용하게 했다.-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선교방식이 일본과 중국과는 달리 동화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2007년 브라질의 성모성지인 아파레시다에서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가 열리고 베네딕도 16세 교황이 연설을 했을 때, 이 연설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었다.
식민지 개척자들이 원주민들에게 가한 고통과 불의는 종종 원주민들의 인권을 짓밟았고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죄들이 ... 수세기 동안 원주민들 사이에 머무신 거룩한 은총의 경탄할 활동을 감사히 인정하는 일을 저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베데딕도 16세, 2007년 5월 23일 연설
베네딕도 16세의 연설의 해당부분은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의 반발을 불렀다.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들과 신학자들에게 이 내용은, 아메리카의 선교가 원주민들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시켰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너무 무신경하고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비쳤다. 그래서 굉장히 예외적이게도 베네딕도 16세의 개막연설의 해당부분은 본문이 아닌, 각주로 처리되어 버렸다. 이 해프닝은 라틴 아메리카의 선교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선과 외부의 시선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교의 선교가 불가피하게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였다는 사실이고 우리는 여기에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로는 참으로 옮기기 힘든 영어 단어 중의 하나가 patronize라는 단어이다. 굳이 한자어를 찾는다면 권비(眷庇), 즉 ‘돌보고 보호하는 것’인데, 이는 절대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관계이며 상대를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이다. 과연 예수회 선교사들이 원주민들, 인디오들, 과라니족을 만났을 때, 선교사들의 시선이 어떠했는지를 묻는 것은 꼭 필요하다.
2022년 7월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를 방문하여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자행된 원주민 자녀들의 학대에 대해서 사과를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 스스로 ‘참회의 순례’라고 표현한 이 사과의 방문에서 교황은 아이들의 학대에 대해서도 사과했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가 원주민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강제적으로 동화시킨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이는 교회의 선교가 갖는 어두운 측면에 대한 인정과 사과이며 그 동안 우리가 반성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인정이다.
아마도 우리는 솔리나스 신부의 시복을 맞이하여 선교사들이 열정을 다하여 복음화의 사명을 수행한 노고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노력이 갖는 어둔 측면을 직시하고 성찰해야 하는 사명, 그럼으로써 우리의 복음화와 선교가 어떻게 하면 문화적인 풍요로움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의 원주민들에게 전한 사과의 메시지는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기억과 유산에게도 가장 어울리는 미안한 마음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미안합니다. 교회와 수도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 정부가 조장한 문화적 파괴와 강제적인 동화 정책에 무신경하게도 협력한 것에 대해서 특히 용서를 청합니다.
프란치스코, 2022년 7월 25일 연설
김민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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