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사회] 21세기의 우등처우의 원칙

김건태SJ 121.♡.226.2
2026.04.27 15:23 10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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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OpenAI DALL-E) 


건동이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자립준비청년이다. 시설을 떠나 독립한지 3년이 되었다. 그동안 건동이는 택배업체에서 일하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일하기도 하고, 고깃집에서 숯불도 나르기도 했다. 고깃집을 찾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을 보면서 건동이도 뭔가 좀 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건동이는 뉴스 보기를 좋아한다.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가고 있는지, 환율은 왜 중요한 건지, 한국은행의 역할은 무언지 궁금한 것이 많다. 그래서 대학에 가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다. 특히 건동이는 자신처럼 부모가 없는 그래서 출발점이 좀 더 불리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약자라고 하더라도 소외되지 않고 적절한 기회를 보장받는 사회를 경제학을 통해서 이루고 싶어 한다.

 

그런데 건동이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지만 막상 시작이 만만치 않다.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할 것 같고, 교재도 사야 하고, 모의고사도 봐야 하고, 스터디 카페도 다녀야 하는데, 공부에 전념하려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수입이 없어진다. 그동안 해놓은 저축으로는 어림도 없다. 또 그 밖에도 들어가는 비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상은 건동이와 같은 처지의 청년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고등학생 때까지 별로 노력하지 않다가 왜 이제 와서 공부를 하려고 하느냐는 의견도 있다. 또 고등학생이던 건동이에게 기초생활수급자인 보호아동 혹은 자립준비청년이 대학에 가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라는 막말을 하는 사회복지사도 있었다고 한다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을 위한 장학금은 많다. 그런데 건동이처럼 뒤늦게 철이 들어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기관과 사람들은 희소하다가난한 집 애들도 재수를 못하는데, 자립준비청년이 무슨 재수냐는 식이다.

 

열등처우의 원칙(Principle of Less Eligibility)은 국가의 도움을 받는 가난한 이가 누리는 생활 수준이 일해서 임금을 받는 최하위 노동자의 생활 수준보다 나빠야 된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1834년 영국에서 빈곤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놓은 신빈민법에서 구현되었다이 열등처우의 원칙은 19세기 영국에만 국한된 신념일까? 이 논리는 2026년을 살고 있는 한국의 건동이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가난한 노동자 가정의 청년도 재수를 못하는데 자립준비청년이 웬 재수냐, 사치아니냐는 논리는 신빈민법이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한다.

 

그러나 열등처우의 원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논란이 된다

 

먼저 근로를 열심히 하는 노동자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부의 불평등, 소득불평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노동자의 나태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열심히 근로하는 노동자의 자녀가 재정적인 이유로 재수에 도전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제구조가 변경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사회복지사의 급여와 수혜자가 받는 혜택은 국가가 주는 시혜가 아니라 마샬(T. H. Marshall)이 주장하는 자유권, 정치권, 사회권에 의한 국민의 권리이다. 건동이에게는 대학교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기 위해 도전할 수 있도록 적절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열등처우의 원칙은 19세기의 유물로 박물관에 보관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필요한 만큼 충분히 기회가 주어지도록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21세기에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나은 처우, 우등처우의 원칙(Principle of More Eligibility)을 발명해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떤가.

 

자립준비청년들의 꿈과 교육 기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길 기대한다. 그리고 국가 장학 기관과 민간 재단들도 대학생뿐만 아니라 조금 늦게 시작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도 관대한 기회를 주면 좋겠다. 건동이가 입시 준비라는 고단한 시기를 견디고, 자신이 꿈꾸던 경제학을 공부해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존재가 되기를 응원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는 패자부활전을 꿈꾸는 건동이의 경제학은 어떤 모습일까, 미래를 기대해 본다.

 

 

 

김건태 수사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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